[드림샷 칼럼] 건축가 구마 겐고가 알려준 원자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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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마 겐고 (隈硏吾)

건축을 모른다. 그런데 지난 주 부산으로 내려가는 KTX 열차 안에서 ‘나, 건축가 구마겐고’ 라는 신간을 잡자마자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그의 이야기는 건축을 전혀 모르거나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독자를 빨아들였다.

구마 겐고는 일본을 대표하는 전후 4세대 세계적인 건축가라고 한다.  그런 대가가 무심한 듯 꼬장꼬장하게 까발리는 건축 세계가 나에겐 실감나게 다가왔다. 가령, 그는 자신을 ‘경주마(競走馬)’에 비유한다. 끝없는 레이스(각종 공모전)에 나가지 않으면 일을 얻을 수 없고, 일이 없으면 건축 사무소도 자신도 무너지기에 오늘도 달린다고 한다. 작년에 그는 새해 동이 트자마자, 베이징·홍콩·미얀마·파리·에든버러·뉴욕을 돌아다녔다. 잘난 건축가의 삶이 어떨 지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그동안 테크놀러지 관점에서 세계 흐름을 이해하는 데 익숙했는데, 건축가의 시선으로 세계 흐름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구마 겐고가 보는 아메리칸 드림은 ‘푸른 언덕 위에 하얀집’이라는 환상이다. 그 욕망이 주택담보대출이라는 괴물을 만들어 2008년 금융 위기를 이끌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모더니즘의 정점이라 불리는 ‘노출 콘크리트 건축’이 크게 유행한 것은 세계화와 관련 있다. 장소와 상관없이 한번만 설계하면, 전 세계에 팔아먹을 수 있는 콘크리트 건축이야말로 얼마나 효율적인가.

그는 아메리칸 드림과 노출 콘크리트로 상징되는 20세기 건축에 반기를 들고 주위 자연물을 최대한 활용한 건축 방식을 추구한다. 시멘트보다 빛 유리, 나무와 돌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의 출세작인 중국의 ‘대나무집’은 건축 소재로 쓰기엔 약한 대나무로 만들었다. 일본 소도시의 ‘기로잔전망대’는 산에 완전히 감춰져 있다.  한국 네이버의 데이터센터 ‘각(閣)’은 팔만대장경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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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도 다다오의 아카 갤러리아 (1998). 노출 콘크리트 건축의 대가로 평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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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마 겐고의 중국의 대나무집(Great Bamboo Wall, 2002).

이 책에는 ‘정보화’라는 단어가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물론 광대역 네트워크나  WiFi(와이파이) 등 테크놀러지 용어도 없다. 그렇지만 그동안 내가 봐왔던 정보화 사회와 오버랩되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푸른 언덕 위에 하얀집’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세운 거부(巨富) 빌 게이츠가 30년 동안 부르짖었던 ‘모든 가정에 컴퓨터를’이라는 구호를 연상시킨다. 수십억원씩하는 메인 프레임이 지배하던 1970년대만 해도 가정에서 컴퓨터를 소유한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했다. 그것이 곧 아메리칸 드림이었다.

웹사이트에 검색창 하나만 달랑 열어둔 구글 사이트는 ‘장식은 죄악’이라는 모더니즘의 최고봉 노출 콘크리트 건축과 통하는 면이 있다. 아무런 장식없이 세계 건축의 사실상 표준을 장악한 콘크리트 건축법처럼 구글 검색엔진은 미국을 넘어 영국, 독일, 프랑스 등 각국에서 검색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맥상통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인터넷 세계를 유대인이 장악하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가 있는데,  구마 겐고에 따르면 물질 세계인 건축 세계도 유대인 판이라고 한다.

유럽 프로젝트든 러시아 프로젝트든 자본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유대인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 미국 도시 개발 프로젝트 대부분은 금융 자본을 쥔 유대인이 지휘한다.  구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커 주커버그 등등이 모두 유대인이고 실리콘밸리를 쥐고 흔든다는 ‘페이팔 마피아’의 주축 멤버도 유대인이다. 금융 자본을 장악한 유대인이 원자 세계(건축)와 비트 세계(실리콘밸리)를 아우르는 글로벌 왕국을 짓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쉬운 언어로 건축의 세계로 안내해 준 대가 덕분에 앞으로 노출 콘크리트를 보면 안도 다다오(일본 전후 3세대 건축가)가 떠오르고, 필로티(공중에 띄운 건축 양식)를 보면 세계화라는 단어도 머릿 속에 맴돌 것 같다.  또 서울 시내 육중한 건물을 보면 휘황찬란한 앞 모습 뒤에 숨어있는 치열했던 자본과 정치의 뒷모습도 상상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땅은 디지털의 세계, 아날로그의 세계, 원자의 세계, 비트의 세계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 섥켜 있는 가운데 맥락이 있으며 일종의 시스템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원자의 세계의 세계를 두루 알면, 내가 취재하는 디지털 생태계, 즉 비트의 세계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류현정 기자 dreamsho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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