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2014]④ 상장폐지전략은 왜 선택하나

류현정 조선비즈 기자 dreamshot@chosun.com  박진영 조선비즈 인턴기자 techchosun@chosunbiz.com

– “창업자가 주도한 델 상장폐지는 독특한 케이스”

기업공개(IPO)는 자본 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다. 그런데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상장한 기업 중에서는 주주 간 표 대결까지 벌이며 자발적으로 상장 폐지에 나서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2013년 미국 자본 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델의 상장 폐지가 대표적이다.

상장 기업이 자발적으로 상장 폐지를 추진하고 사기업(private company)으로 돌아서는 주된 이유는 통상적인 경영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가령, 공개 기업은 거래소의 까다로운 공시 규정을 지켜야 하고 실적도 때마다 공개적으로 알려야 하는 데 사기업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공개 기업의 경우, 주주 총회에서 실적 악화 등을 이유로 경영자를 갈아 치우라는 투자자들의 압박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 델 공식 홈페이지는 ‘델은 이제 사기업입니다’라는 문구를 내걸고 마이클 델 창업자와 사모펀드 실버레이크의 델 인수 소식을 크게 알렸다. /델 홈페이지 캡처

▲ 델 공식 홈페이지는 ‘델은 이제 사기업입니다’라는 문구를 내걸고 마이클 델 창업자와 사모펀드 실버레이크의 델 인수 소식을 크게 알렸다. /델 홈페이지 캡처

최근 증시에서 ‘큰 손’으로 부상한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는 상장 기업을 인수하고 나서 해당 기업을 상장 폐지(delisting)하는 것이 공식처럼 돼 있다. 주로 부실한 회사를 인수해 리모델링한 후 기업 가치를 높여 재상장, 해외 사장, 지분 매각 등으로 회사를 비싸게 되파는 것이 사모펀드의 수익 실현 전략이다.

보통 사모펀드는 인수회사를 사기업으로 전환하고 조용히 기업 구조조정에 나선다. 돈 안 벌리는 사업을 매각하고 인력을 해고하는 등 기업에 메스를 가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나오기 때문이다. 또 사모펀드 입장에서 일반 투자자 눈치를 보다가 구조조정에 속도를 낼 수도 없다.

2010년 미국 사모펀드인 3G캐피탈은 패스트푸드업체 버거킹을 인수하고 바로 뉴욕증시에서 버거킹을 끌어 내렸다. 버거킹의 뉴욕증시 상장폐지를 결정한 3G캐피탈은 회사 리모델링 작업에 들어갔고 이후 지분 29%를 영국 투자회사 저스티스홀딩스에 매각했다. 저스티스홀딩스는 2012년 뉴욕증시에 버거킹을 재상장시켰다.

지난해 페어팩스파이낸셜홀딩스(FFH) 컨소시엄이 실적 부진에 시달린 캐나다 휴대전화 제조업체 블랙베리 인수에 나섰을 때도 블랙베리가 곧 상장 폐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졌다. 사모펀드의 기업 인수와 상장 폐지, 구조조정 후 재매각 혹은 재상장이 수순이기 때문이다. FFH 컨소시엄이 블랙베리 인수에 필요한 자금 조달에 실패해 현재 블랙베리는 매각보다는 자체 회생안을 마련 중이다.

미국 증시에 화려하게 입성했던 중국 업체의 자진 상장폐지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한때 미국의 차이나 투자 붐 덕분에 뉴욕증권거래소나 나스닥에 수월하게 입성했지만, 요즘엔 저조한 실적과 주가 폭락으로 악명이 높다. 미국계 혹은 중국계 사모펀드들이 문제 많은 중국 기업의 미국 거래소 상장 폐지를 주도하고 있으며 이들 펀드는 미 증시가 아닌 중국 증시에 인수한 기업을 재상장시키는 방법으로 수익 실현을 노리고 있다.

국내에선 2012년 사모펀드인 유니슨캐피털이 1700억원을 들여 코스닥상장업체인 넥스콘테크놀러지를 인수하고 소액주주 지분도 사들여 상장 폐지했다. 2000년 상장된 넥스콘은 휴대전화 배터리 제어 부품 생산업체다.

외국 기업인 이베이가 한국의 옥션과 G마켓을 차례로 인수하고 상장폐지 시킨 사례도 있다. 이베이는 2001년 2월 옥션을 인수하고 2년 후인 2004년 옥션의 나머지 주식들을 사들여 회사를 상장 폐지했다. 옥션은 4년 6개월 만에 코스닥 시장을 떠났다.

이베이는 또 2006년엔 G마켓을 인수하고 이 회사를 상장 폐지했다. G마켓은 당시 미국 나스닥에 상장돼 있었다. 이베이의 경우, 사모펀드와 달리 일반 투자자와 규제 기관의 눈치와 간섭에서 벗어나 제 입맛대로 경영하기 위해 옥션과 G마켓을 사기업으로 전환했다.

이밖에 상장 효과, 예를 들어 저렴한 자본조달 비용, 회사 신뢰도 확보, 브랜드 홍보 효과 등 장점보다 상장 유지 비용이 많이 들 경우에도 자발적으로 사기업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강원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상장 기업들은 거래소 규정에 따라 공시, 회계, 이사회 등에 많은 돈을 지출한다”면서 “특히, 미국의 경우 기업 경영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사베인 옥슬리법’을 발효한 이후 상장 유지 비용이 많이 들어 사기업으로 전환하거나 나스닥 상장을 폐지하고 런던으로 거래소를 갈아타는 기업이 속속 나타났다”고 말했다.

델4-2

델의 상장 폐지는 독특한 사례로 꼽힌다. 델은 부실기업은 아니다. 2008년 이후 델의 성장률이 제자리걸음을 걷고는 있지만, 2012년 델 매출은 620억달러(약 63조원)이었고 2013년 델 매출은 780억달러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마이클 델 창업자가 사모펀드를 끌어들여 선제적으로 회사 상장 폐지를 주도한 것이 눈에 띈다.

대체로 전문가들은 델 창업자가 단기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회사 가치를 올리는 방법을 찾기 위해 상장 폐지한 것으로 분석한다. 보통 주식 시장에 참여한 투자자들의 간섭은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촉진하지만, 경영자들은 주주 눈치를 보느라 단기 실적에만 매달리게 된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는 “델 사례는 창업자가 회사를 턴어라운드 시키기 위해 배수진을 친 사례로 보인다”면서 “한국에서는 팬택 등이 채권단에 자신이 보유한 주식 지분을 내놓고 ‘백의종군’한 경우는 있지만, 보통 회사 오너(소유주)가 바뀐다는 측면에서 델 사례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창업자가 자신의 돈까지 쏟아부으며 배수진을 친 것은 일단 투자 시장에 ‘우리를 믿고 기다려 달라’는 긍정적인 시그널(신호)를 투자 시장에 준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사모펀드인 실버레이크의 지분이 25.1%라는 점을 들어 델이 서둘러 재상장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사모펀드의 특성상 재상장 등의 방법으로 수익을 실현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미국 사모펀드 중에서는 10년까지 내다보며 투자하는 롱텀 펀드(long term fund)들이 꽤 있다”면서 “델이 연구개발(R&D)은 거의 하지 않고 PC를 조립생산하는 기존 사업 모델에서 벗어나려면 상당히 시간이 걸릴 텐데, 창업자가 회사가 성과가 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릴 수 있는 사모펀드를 찾아 자금을 조달하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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