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2014]③ 마이클 델은 누구인가

우병현 조선비즈 기자 penman@chosun.com  박진영 조선비즈 인턴기자 techchosu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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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12살, 어린 마이클 델은 우표를 팔아 2000달러가량을 벌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막 결혼하거나 새로 집을 장만한 사람들을 공략해 신문 구독 장사로 또 돈을 벌었다.

1965년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서 출생한 델은 치과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1983년 텍사스 오스틴 의과대에 입학했지만, 그의 피에 흐르는 유대 상인 본능은 감출 수가 없었다. 그는 대학 기숙사에서 애플 II를 구입해 뜯어보면서 PC 구조를 익히고 사업에 대한 꿈을 키웠다. 1984년 1000달러 자금을 바탕으로 PC 조립 사업을 시작했다. ‘델 컴퓨터 코퍼레이션(Dell Computer Corporation)’의 시작이다. 그는 곧 대학을 중퇴했다.

1985년 델은 ‘터보 PC(Turbo PC)’라는 첫 자체 조립한 PC를 795달러에 판매했다. 첫해 영업이익은 7300만 달러에 달했다.

컴퓨터 사업을 시작한 지 불과 4년 만에 나스닥에 상장한다. 1990년 아프리카, 유럽, 중동에서도 델 PC 주문이 몰려들었고 델은 아일랜드에 제조공장을 설립했다. 델은 1992년 미국 포천지(紙)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에 뽑혔다. 당시 마이클 델의 나이는 27세로 500대 기업 창업자 중 최연소였다.

1995년 한국지사를 설립했고 1997년에는 텍사스주에 두 번째 제조공장을 설립해 100만번째 PC를 선적하는 기록을 세운다. 1999년 델과 그의 아내는 ‘마이클 & 수잔 델 파운데이션’ 자선단체를 설립했다. 아이들의 건강과 교육문제에 도움을 주기 위한 자선단체였다.

2001년 델은 휼렛패커드를 꺾고 최초로 전 세계 1위 컴퓨터 시스템 제공업체 자리에 올랐고 2002년엔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 젊은 부호 1위(300억달러)에도 이름을 올렸다.

2000년대 중반까지 델이 ‘PC 업계의 제왕’  ‘PC 공룡’으로 불린 이유는 중간 유통단계를 없애는 다이렉트 판매로 비용을 줄이고 시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2004년 3월 마이클 델은 승승장구하는 델을 전문경영자에게 맡기고 CEO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직함만 유지했다.

그러나 2005년부터 델의 성장세는 둔화하고 주가는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델 노트북 배터리 불량으로 인한 화재가 세계 곳곳에서 발생했다. 델은 노트북 배터리 410만대를 리콜했다.

2007년 1월, 델컴퓨터에 대한 고객 불만이 폭증하면서 위기를 맞자 창업자 델은 CEO로 복귀한다. 그해 2월 그는 고객 의견수렴 플랫폼인 아이디어스톰(IdeaStorm)을 개설했다.

2008년부터 델은 인수합병 행진에 나선다. 2008년 스토리지 업체 이퀄로직을 인수하고 2009년 델은 IT서비스 회사 페롯시스템즈(Perot Systems)를 사들였다. 2010년엔 부미, 엑사넷, 인사이트 원, 케이스, 오카리나 네트웍스 등을, 2011년 델은 시큐어 워크, RNA 네트워크, 포스10네트워크를 인수했다. 2011년 델 사상 최대 수익을 기록했고 델은 2012년 앱 어슈어, 소닉 월, 클레러티, 메이크 테크놀로지스, 와이즈, 퀘스트, 게일 테크놀로지스, 크레던트 등을 인수했다.

2013년 10월 창업자 델은 사모펀드 실버레이크,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함께 회사 델을 인수해 델을 25년 만에 비상장 기업으로 돌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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