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최첨단 현장을 가다] ②스타트업 甲, 캐피탈 乙

류현정 조선비즈 기자 dreamshot@chosun.com

“5년 전에는 자금을 대주는 벤처캐피탈이 갑(甲)이었지 몰라도 지금은 아닙니다. 잘나가는 스타트업(초기 기업)이 ‘갑’이고 벤처캐피탈은 ‘을(乙)’입니다.”

지난달 11일 만난 LA에 기반을 둔 스트롱벤처스의 존 남 파트너는 최근 달라진 투자 분위기를 한국에서 유행하는 ‘갑-을’ 표현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벤처캐피탈리스트 사이에서는 5년 전만 해도 자금을 대준다는 것 자체가 파워였는데, 이제는 주도권이 투자자에서 창업가로 넘어가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창업가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남 파트너는 “예전에는 벤처캐피탈이 유망한 스타트업에 자금을 제공해주는 것이 중요했지만, 요즘에는 좋은 투자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자금만으로 부족하다”며 “지금은 창업가에게 멘토링(조언), 주요 인맥 소개, 다음 단계 투자자 연결, 제품 개발 조언, 개발자 주선, 법률 상담 등 상담한 플러스 알파를 제공해야 좋은 투자기회를 얻는다”고 말했다.
“요즘은 스타트업이 갑(甲)이고 벤처캐피털은 을(乙)”

 
 스냅챗/화면캡처

최근 대규모 펀딩에 성공한 스냅챗은 최근 실리콘밸리에 유행하는 ‘마이크로 스타트업(소규모 자본창업)’ 성공 공식을 따르고 있다. 스냅챗은 상대방에게 사진을 보낼 때 ‘10초 제한’을 설정하면 10초 후 사진이 자동으로 삭제되는 기능이 포함돼 있어 ‘자기 파괴 앱(self-destructing app)’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이 회사도 출발은 가벼웠다. 2011년 스탠퍼드대 재학생이던 에반 스피겔과 바비 머피가 스피겔 아버지가 살던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집에서 창업했다. 초기 직원 수는 창업자와 엔지니어 2명, 커뮤니티 매니저 1명 등 고작 5명이었다. 지금도 직원 수가 17명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스냅챗의 일일 사용자 수는 500만명이고 매일 공유되는 사진수는 2억개가 넘는다.

올 2월에는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 중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벤치마크가 주도해 스냅챗은 총 135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지난달 28일에는 인스티튜셔너벤처파트너스(IVP), 제너럴캐털리스트파트너스, 벤치마크캐피탈 등이 6000만달러(약 69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추가로 쏘았고 스냅챗 기업가치는 8억달러 이상으로 치솟았다.

지난달 18일 찾아간 스타트업 튠인(TuneIn.com)은 실리콘밸리 지역에서도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스탠퍼드대학 앞 유니버시티 애비뉴에 자리 잡고 있다. 이 회사는 전 세계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는 앱을 개발했다. 고급스럽게 보이는 나무 책상과 헤드폰을 끼고 개발에 열중하는 엔지니어, 각종 인물 사진으로 만든 초대형 튠인 로고 등이 눈에 띄었다.

이 회사는 최근 엔지니어들에게 점심 무료 제공을 시작했다. 구글이나 야후 등 대형 IT회사처럼 점심을 뷔페 형식으로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맛깔스런 영양식 도시락을 매일 점심마다 내준다.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위치한 튠인 사무실

“스타트업들이 많다 보니 실력 있는 엔지니어를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회사 위치도 옮기고 점심도 제공하는 이유는 좋은 엔지니어를 흡수하기 위해서이지요.”

지난해와 올해 펀딩에 성공한 이 회사는 창고 같은 사무실에서 스탠퍼드대가 있는 팔로알토로 사무실을 옮기고 복지도 조금씩 늘리고 있는 것이다.

튠인은 지난해 세콰이어캐피탈, 구글벤처스 등으로부터 1600만달러 펀딩을 받았고 올해는 벤처캐피탈 IVP(Institutional Venture Partners) 등으로부터 2500만달러를 추가 투자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작은 돈으로 창업이 가능하다 보니, 창업가들이 투자 유치를 가급적 미루려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사업 초기에 필요한 소자본 정도만 유치한 후 제품을 개발할 때까지 버틴다. 초기 아이디어만 가지고 투자를 받으면 기업 가치를 낮게 평가받아 많은 지분을 투자자에게 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마이크로 스타트업들은 제품을 완성하고 회원도 모집하는 등 기업 가치를 크게 부풀려놓고 여유있게 자금 조달에 나선다.

전환단기어음(convertible note) 형태 투자도 유행하고 있다. 전환단기어음은 특정 시점에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대출금을 말한다. 어음 형태로 투자를 받으면 창업자는 지금 당장 지분을 포기하지 않아도 돼 유리하다.

원래 벤처캐피탈은 가능성 있는 기업에 미리 투자하고 성공하면 수배, 수백 배 수익을 올리는 것이 본업이지만, 잘 나가는 스타트업은 대출을 해서라도 투자 기회를 잡으려고 한다고 현지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은 귀띔했다.

실리콘밸리에서 한국, 대만, 일본계 파트너와 함께 트랜스링크라는 벤처캐피탈을 이끄는 음재훈 대표는 “2007년 아이폰이 탄생한 다음 아이폰이 모바일 신천지를 열었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찾아 숱한 스타트업들이 탄생했다. 미국 스타트업들이 모바일 혁명을 주도하고 있고 벤처캐피탈들도 마이크로 창업이라는 새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로 스타트업’ 방식 실천해 성공 사례 만들어

와일드파이어(Wildfire)는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마케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링크드인 등 소셜미디어를 통합해 홍보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제공한다.

2008년은 페이스북이 막 뜨고 있을 무렵이었다. 공동 창업자인 빅토리아 랜섬(Victoria Ransom)과 알리안 추어드(Alain Chuard)는 페이스북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가입하는 것을 눈여겨보고 기업들이 조만간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광고와 홍보에 나설 것이라고 판단하고 회사 설립을 결심했다.

 
 와일드파이어 공동창업자 빅토리아 랜섬과 알라인 추어드

와일드파이어의 창업 무대도 페이스북이 주최한 ‘페이스북 펀드 어워드(Facebook Fund Award)’였다. 2008년 여름에 열린 이 대회에서 창업자들은 600여팀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1등을 차지해 25만 달러를 받았고 이 돈으로 회사를 시작했다. 2009년 페이스북으로부터 10만 달러를 추가로 받았고 사이트를 개설하자마자 수익을 내며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이 회사의 직원 수는 5명이었다.

미국 벤처캐피탈업계가 와일드파이어를 주목한 것은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 와일드파이어는 아이디어 차원이 아니라 실제 매출을 일으키고 있었다는 점, 둘째 뉴질랜드 출신인 창업자 빅토리아 랜섬이 4번이나 스타트업을 만들었던 경험이 있었다는 점이다. 와일드파이어는 그의 5번째 스타트업이다. 미국 투자자들은 창업해본 경험을 높이 산다. 성공확률이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2010년 4월 이 회사는 400만 달러에 달하는 시리즈 A 펀딩(1단계 자금 조달)에 성공한다. 이 펀딩에는 벤처캐피탈 서밋 파트너스(Summit Partners)와 제프 클레비어(Jeff Clevier)와 같은 엔젤 투자자가 참여했다. 당시 기업 가치는 1600만 달러로 매겨졌다.

2011년 말에는 와일드파이어의 시리즈 B 펀딩(2단계 자금조달)이 시작됐다. 와일드파이어는 서밋 파트너스, 페리시스 벤처스(Felicis Ventures), 500스타트업, 소프트테크 VC 등으로부터 1000만 달러를 투자받았다.

 2008년 7월에 창업한 와일드파이어는 2012년 8월 구글에 인수됐다.

이 펀딩에는 벤처캐피탈리스트 음재훈씨가 파트너로 있는 트랜스링크(Translink)도 참여했다. 와일드파트너가 해외 진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때 트랜스링크의 일본인 파트너가 거의 1년간 이 회사 로드쇼를 따라다니며 직접 일본 광고주를 소개해주고 라이선스 사업을 주선했다

두 번째 펀딩 라운드에선 벤처캐피탈 간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이미 유망 벤처 기업으로 투자자들 사이에 입에 오르내렸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서로 와일드파이어에 펀딩하겠다고 나섰고 기업 가치도 계속 치솟았다. 그러나 랜섬 CEO는 여러 번 창업을 해봤기 때문에 무조건 몸값을 높여 받지는 않았다. 자금을 많이 받으면 무리하게 회사를 확장시켜야 하는데, 이는 경영에 오히려 독이 되기 때문이었다.

2012년 8월 구글은 3억5000만달러에 각종 보너스를 더한 가격에 와일드파이어를 사들였다. 현재 와일드파이어는 구글 엔터프라이즈 사업 분야에서 운영되고 있다. 펩시, 소니 등 세계 50대 브랜드 중 30여개가 와일드파이어의 고객이다. 총 고객수는 1만6000개사에 이르며 5년 전 5명이던 직원 수는 400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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