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최첨단 현장을 가다] ③ 엔젤 투자 대형화…버블논란

류현정 조선비즈 기자 dreamshot@chosun.com

엔젤이 ‘투자자’란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990년대 초부터이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연극 무대를 후원하는 부유한 개인 투자가를 엔젤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창업 초기 종잣돈을 대주는 엔젤은 대부분 개인투자자였다. 엔젤이 개인투자자라는 점은 창업투자회사인 벤처캐피탈과 구분하는 잣대로도 쓰였다.

최근 소규모 자금을 갖고 회사를 세우는 이른바 ‘마이크로 창업’이 확산하면서 엔젤 투자자의 범위와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이제 실리콘밸리의 내로라는 엔젤 투자자들은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 창업자가 후배의 등을 두드리며 건네는 격려성 자금 수준을 넘었다. 정교한 창업 육성 프로그램과 평가 시스템을 갖추고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전문 투자 집단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스타트업(초기기업) 육성 기관의 등장으로 엔젤이 기업화, 대형화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미국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에 있는 500스타트업에서 벤처 기업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다./류현정 기자
기업으로 진화하는 엔젤 투자

2005년 설립된 ‘Y컴비네이터’는 오늘날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의 표준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Y컴비네이터는 우선 창업자를 뽑아 1만~2만 달러 초기 자금을 지원한다. 선발된 팀은 약 3개월 동안 공동 작업소에서 집중적인 훈련을 받는다. 입주 4개월 차에는 대형 투자자들 초대해 스타트업들의 사업 발표회를 연다.
Y컴비네이터는 이런 프로그램으로 지난 2005년부터 지금까지 30개국, 500여개의 스타트업을 배출했다. 이중 37개사의 기업 가치는 최소 4000만달러가 넘는다.

지난달 14일 Y컴비네이터에서 만난 폴 그레이엄 Y컴비네이터 창업자는 “창업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면서 “우리 프로그램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창업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500스타트업을 만든 데이비드 맥글루 대표 파트너는 이베이에 매각된 온라인 결제솔루션업체 페이팔의 초기 멤버였다. 회사 매각으로 큰 돈을 벌게 된 맥글루는 엔젤 투자가로 변신했다가 스타트업을 집중 육성하는 500스타트업을 설립했다.

현재 미국은 창업지원센터를 창업하는 새로운 붐까지 일고 있다. ‘500스타트업’, ‘플러그앤플레이’, ‘로켓스페이스’, ‘스타트X’ 등 미국 내 전문 창업 기관만 줄잡아 200개가 넘는다.

엔젤 투자가 기업화, 대형화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마이크로 창업 시대가 열리면서 엔젤 투자가 그야말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엔젤들이 펀드를 만들어 스타트업 한 곳에 투자하는 자금은 고작 우리돈 수천만원에서 억대 수준이지만, 수십 배 수백 배 이상 불려주는 잭팟이 여기저기서 터진다.

벤처캐피탈이 창업 지원센터가 주도한 펀드에 자금을 제공하는 일도 나타나고 있다. 창업 지원센터의 펀드에 투자하면, 유망한 스타트업과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좋은 투자 기회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창업 보육기관인 Y컴비네이터와 한국계 데이비드 리(David Lee)가 참여하는 SV엔젤은 ‘스타터 펀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Y컴비네이터는 창업 육성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SV엔젤이 자금을 만들어 스타트업에 투자한 것이다. 클라우드 서비스업체 드롭박스,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 등이 모두 Y컴비네이터와 SV엔젠의 스타터 펀드로 탄생한 스타 기업들이다.

 그래픽 = 최지웅 연구원

벤처투자 양극화 속에 거품 논란 벌어져

실리콘밸리에 만난 투자가들은 마이크로 스타트업의 유행, 엔젤 투자의 성공 사례 때문에 극심한 ‘투자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양극화는 두 가지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첫째는 소프트웨어업 투자 쏠림 현상이다. 최근 미국 벤처캐피탈협회(NVCA)의 분기별 투자 동향 보고서 ‘머니트리 리포트’에 따르면 올 1분기 미국 벤처 투자 자금의 45%가 소프트웨어 업체에 투자됐다. 네트워크 통신장비와 반도체 분야에는 각각 4억 달러와 1억 3000만 달러 투자됐다. 비중으로 따지면, 전체 벤처 자금의 각각 7%, 2% 수준이다.

투자 자금 규모도 양극화 추세가 뚜렷했다. 마크 헤센 NVCA 사장은 “2012년 벤처자금 동향을 분석한 결과 7억 달러의 이상의 대형 펀드를 운영하는 벤처캐피탈이 검증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경우와 매우 작은 자금을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경우로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고 있다고 말했다. 양극단에만 자금이 쏠리는 것을 두고 그는 “바벨(Barbell·역기)모양과 비슷하다”며 벤처캐피탈업계의 ‘바벨 현상’이라고 불렀다.

 그래픽 = 최지웅 연구원

패트릭 정 낙셔리캐피탈(Naxuri Capital) 파트너도 비슷한 사정을 전했다. 그는 “통신과 반도체 장비에 수백억원 규모로 투자하던 벤처캐피탈들이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결국 사라졌다”면서 “이제는 벤처캐피탈들이 너도나도 모바일과 소셜에만 투자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세콰이어캐피탈과 같은 초대형 벤처캐피탈은 엄청난 자금을 굴리면서 이미 성공이 보장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데, 소셜 및 모바일 관련 기업이 지나치게 비싸게 평가받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창업 자금이 한쪽으로 쏠리다 보니 거품 논란도 계속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1~2년 새 상장한 페이스북, 그루폰, 징가 등 소셜 및 모바일 게임 종목들이 공모가 밑을 맴돌면서 투자 거품 공방은 계속 되고 있다.

배인탁 서미트파트너스(서울대 객원 교수) 대표는 “Y컴비네이터 등은 소자본 창업 열풍에 꼭 맞는 창업 육성 기관인데, 현지에서는 기업 성장을 가속화시킨다는 의미에서 액셀러레이터(accelator)라고 불린다”면서 “이런 창업 육성 기업 모델은 21세기 벤처모델이기는 하지만, 미국이라는 거대한 벤처 생태계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한국형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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