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터넷 대중화 20년](7) 포털 공화국을 연 새 리더십 이해진 네이버 의장 ④

▲ 일본 도쿄 지바현에 위치한 라인주식회사 사옥에서 ‘모바일 메신저 라인 가입자 3억명 돌파 기자간담회에서 이해진 의장이 12년만에 공식석상에 나와 소감을 밝히고 있다./네이버 제공

“오늘 ‘라인’ 가입자 3억명 돌파 행사를 같이 지켜봤는데, 아직 현실감이 없고 꿈만 같습니다.”

2013년 11월 25일 도쿄 지바현에 위치한 라인주식회사 사옥. 이해진 네이버 의장은 모바일 메신저 ‘라인’을 상징하는 초록빛 포토월 앞에서 섰다. 2001년 한게임 유료화 기자간담회 이후 12년만에 공식 석상에 등장한 이 의장이었다.

그는 “일본에 사업이 잘 안된 것도 그동안 인터뷰를 못하고 했던 이유”라면서 “5~6년 동안 정말 돈 많이 쓰고 정말 힘들었는데, 3억이라는 숫자는 의미가 있는 숫자라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1999년 후발주자로 출발했지만, 야후코리아, 다음 등 경쟁자들을 차례로 꺾으며 국내 인터넷 시장을 평정했다. 순항했던 국내 사업과 달리 네이버의 해외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네이버의 야심찬 도전은 ‘서비스 중단’ ‘사업 철수’ ‘법인 폐쇄’ 등 쓰라린 결과로 돌아왔다.

마침내 2011년 일본 법인에서 개발한 모바일 메신저 ‘라인’이 터졌다. 라인의 성공은 네이버라는 내수 중심의 인터넷 조직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계기가 된다.

 

◆ 해외 진출 교두보였던 일본에서의 반복된 실패

네이버의 첫 번째 해외 무대이자 일종의 교두보는 일본이었다. 이해진 의장은 창업 초기인 2000년 이전부터 일본에 문을 두드렸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국내에서 수익을 창출하지 못할 경우 일본에서 솔루션을 팔거나 시스템통합(SI) 사업을 해서라도 돈을 벌여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또 국내 시장 크기가 작기 때문에 언젠가는 도전해야 할 해외 시장에 서둘러 진출해 선점 효과를 보자는 계산도 있었다.

2000년 9월 한게임재팬(자본금 3억원), 2000년 11월 네이버재팬(자본금 11억원)이 설립됐다. 게임 분야는 성과가 있었다. 한게임재팬은 2002년 일본 게임시장 진출 1년 만에 일본 게임 사이트 중 인기 순위 2위에 올라섰다. 2004년 한게임재팬은 연간 매출액 246억원, 영업이익 35억원을 올리며 일본 진출 4년 만에 흑자 전환했다. 2004년 6월 기준 일본 내 회원수 600만명, 동시접속자수 6만5000명을 돌파하며 일본 게임 포털 시장 1위에 올랐다. 일본 사업을 이끈 사람은 김범수 당시 NHN 대표의 초·중·고 동창인 천양현씨였다. 그는 NHN재팬 회장까지 맡았다가 2009년 퇴사했다.

네이버의 일본 포털 사업은 처음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다. 네이버는 한국과 유사한 포털 서비스를 일본에 내놨다. 야후재팬의 장벽은 예상보다 높았다. 야후재팬의 점유율은 70%에 달했고 네이버재팬의 점유율은 한자릿수대에 그쳤다.

검색 사업이 부진하자 네이버는 2003년 10월 네이버재팬과 한게임재팬을 합병해 ‘ NHN재팬’을 만들었다. 결국 2년 뒤인 2005년 8월 NHN재팬은 검색 서비스를 중단하고 홈페이지(www.naver.jp)를 폐쇄했다. 네이버는 그해 6월 일본에 커뮤니티 서비스 ‘쿠루루’를 내놓았는데, 검색 서비스를 폐쇄하고 남은 기능들은 여기에 통합했다.

▲ 네이버 재팬 홈페이지는 지난 2005년 8월부터 서비스가 중단됐다. / 조선일보DB

이해진 의장은 2006년 6월 ‘첫눈’을 350억원에 인수하면서 일본 검색에 도전하겠다는 꿈을 다시 꿨다. 첫눈은 네오위즈 창업자 중 한사람이었던 장병규씨가 주도해 설립한 회사다. 네이버는 첫눈의 기술도 기술이었지만, 첫눈의 인재 확보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이해진 의장은 돌다리도 두들겨보는 평소 스타일처럼 두 번째 일본 검색 시장 도전에서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 2001년 당시 이해진 의장과 이준호 CTO(현 NHN엔터테인먼트 회장)는 한국식 통합 검색이 일본에서도 먹힐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다시 진출했을 때는 이런 순진한 기대는 버렸다.

네이버가 첫눈을 인수하던 2006년 8월 NHN재팬은 첫눈팀과 일본 검색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당시 TF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서울에서 20명 안팎이 일본으로 넘어가 NHN재팬 직원들과 한국 네이버 검색을 일본에 적용하는 것을 연구하고 마케팅 방안을 짰다”며 “당시 잘해보자는 분위기가 주류였지만, 한국어에서 쌓인 기술을 일본에 적용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네이버가 일본에 다시 검색 서비스를 재개하는 데 4년이 걸렸다. 2009년 7월 네이버재팬 서비스를 재개했다. 이 의장은 두 번째 도전에서는 야후와 구글에 정면 승부 걸기보다는 우회 전략을 택했다. 서비스의 핵심은 ‘네이버마토메(matome. naver.jp)’였다. 마토메는 주제에 맞는 사이트, 사진, 동영상, 정보 등을 모아 정리하는 일종의 스크랩북 서비스로 네이버 ‘지식인(iN)’처럼 이용자들이 직접 글을 작성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마토메가 좋은 반응을 얻기는 했지만, 네이버가 일본 검색 상위업체로 도약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네이버의 한 관계자는 “네이버의 해외 진출 도전 자체가 아픔이고 골곡이었다”면서 “특히 일본 검색 서비스 진출 실패는 이해진 의장이 가장 아파하는 곳이라 내부에서는 누구도 말을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2010년 4월 네이버는 일본 7위 포털업체 ‘라이브도어’를 63억460만엔(758억원)에 인수하며 분위기 반전에 나섰다.

 

◆ 중국 사업에 이어 미국 사업도 철수

▲ 2004년 6월 NHN과 중국 하이홍 그룹이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2004년 3월 당시 최휘영씨와 NHN 공동 대표를 맡고 있었던 김범수 대표는 회의 도중 NHN차이나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중국 최대 게임포털인 ‘아워게임’을 운영하는 하이홍(海虹) 측에서 회사 인수 의사를 타진해온 것이다. 이해진 의장과 김범수 대표는 다음날 바로 상하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두 사람은 중국에 수월하게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판단했다. NHN은 그해 6월 아워게임 지분 50%를 1억달러(약 1055억원)에 인수한다.

당시 NHN 이사회에서도 아워게임 인수 안건은 만장일치로 통과하는 분위기였다. 중국에서 동시접속자수 60만명을 자랑하는 유력 게임 포털회사가 합작회사의 파트너로 NHN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NHN 경영진을 뿌듯하게 했다. 국내 사업의 경우 한게임 매출이 탄탄했고 네이버의 검색 매출도 상승세를 타고 있어서 중국 진출 카드에 베팅을 해 볼만한 시점이었다. 두 회사가 설립한 합작법인 롄종(www.ourgame.com)의 대표는 네이버 창업 멤버인 김정호씨와 하이홍 측의 바오위에차오(鮑岳橋)씨가 공동으로 맡았다.

2005년 7월 NHN은 김범수 당시 NHN 글로벌 담당 대표의 지휘 아래 자본금 120억원 규모로 NHN USA도 설립했다. 1년 정도 준비 기간을 거쳐 2006년 7월 한게임의 미국 버전인 게임 포털 ‘이지닷컴(www.ijji.com)‘을 선보였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해외 법인 실적은 부진을 면지 못했다. 중국법인의 적자는 계속됐다. 2008년 5월 어느날 네이버 시가총액이 10조원 아래로 무너졌다. 애널리스트들은 롄종 등 해외 사업의 부진을 주가 폭락(8%) 원인으로 앞다퉈 꼽았다. 중국 정부가 2008년부터 외국산 온라인 게임의 판호(허가권)를 제한하는 등 대대적인 규제에 나선 것이 합작법인의 발목을 잡았다. 2009년부터는 네이버의 중국 사업 철수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2009년 11월 김정호 한게임 대표가 돌연 사표까지 내자, NHN의 중국 사업 철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한국 인터넷 기업의 중국 사업에 사정이 밝은 한 관계자는 “중국 포털업체와의 합작 법인 설립 등 큰 그림 자체는 좋았다”면서 “그러나 NHN이 중국에 진출하면서 과도하게 한국 중심의 매니지먼트(경영)를 했던 것이 파트너사와 불협화음을 낳았고 소기의 목적까지는 달성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이지닷컴도 최고 동시접속자수 2만6000명을 기록하는 등 선전했지만, 실적에 도움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2009년 NHN USA는 100억원을 들여 개발한 ‘아크로드’를 북미 시장에서 내놓았지만, 현지에서 ‘노가다 게임’이라는 혹평을 들어야 했다.

2008년 8월 NHN은 새 CFO로 기업금융에 밝은 황인준씨를 영입한다. 그는 우리투자증권에서 IB사업부를 총괄하며 기업 인수, 매각 등에 경험을 쌓았다. 2010년 NHN은 보유중이던 아워게임 지분 전량을 중국 컨설팅업체 WDWF에 매각하고 중국 사업에서 철수했다.

2011년 12월 NHN USA는 이지게임스 지분 100%를 에어리어게임즈에 주고 에어리어게임즈의 지분 10%를 인수하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미국 사업에도 철수했다.

▲ /그래픽=박종규

 

◆ 여진의 공포 속에 한일 합작으로 탄생한 라인 …네이버 ‘내수 기업’ 꼬리표 떼다

“일본 동북부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이해진 의장은 일본에 있었습니다. 마침 지진 당일 이 의장과 화상회의를 했습니다. 이 의장의 뒤로 벽이 왔다갔다 하더라구요. 도쿄였는데도 말이죠.”

황인준 CFO는 2011년 3월 11 일을 이렇게 묘사했다. 당시 전화통신은 두절됐는데 인터넷 선(線)만은 살아있어 안부를 물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지진 피해자들은 전화 연결이 안되니, 왓츠앱이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로 가족과 친구를 찾았다.

당시 이해진 의장은 이사회에서 “직원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모두 대책을 의논해야지 그냥 넋놓고 있으면 되겠냐, 대책이 미흡하다”며 불같이 질책했다.

그리고 그는 네이버재팬 개발팀에는 “새 제품 하나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그해 4월 네이버재팬에 모바일메신저 개발팀이 꾸려졌다. 팀원은 열댓명. 일본 검색 서비스를 담당했던 첫눈 출신들과 일본 개발팀들이 주축이었다.

도쿄에서도 여진의 공포는 계속 됐다. 한국인 개발자들의 가족은 고향으로 떠나갔다. 남은 직원들은 회사 밖으로 나가는 것이 더 두려웠다. 개발에 착수한 지 불과 두 달만인 2013년 6월 23일 ‘라인’이 세상에 나왔다.

이해진 의장은 ‘절박함’이 라인을 탄생시켰다고 회고했다.

“정말 많은 시도들이 실패하고요, 정말 마지막 순간에 이번에는 지진까지 와가지고 일본에서 사는 것조차 공포스러울 때, 저도 여기서 지진을 겪었는데, 그 이후에 끝까지 남아 있던 친구들이 밤새워 만든 게 라인입니다.” (2013년 11월 25일 라인 3억 돌파 기자 간담회)

▲ /그래픽=박종규

라인은 서비스 출시 19개월만에 사용자 1억명을 돌파했다. 1억명 사용자 돌파는 트위터(49개월), 페이스북(54개월)보다 빠른 것이었다.

네이버는 2014년 10월 30일 현재 라인의 전세계 누적 가입자 수가 5억6000만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라인 사용자가 1000만명 이상인 국가는 현재 일본·태국·대만 등 현재 총 12곳. 정식 서비스를 출시한 국가는 16개국이다. 2014년부터 인도네시아 이용자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 아시아권의 대표 메신저로 자리를 잡았다. 멕시코, 콜롬비아 등 남미 지역과 중동 지역에서도 라인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라인 서비스는 한국에서의 앞선 경험과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을 이식하는 네이버의 기존 해외 진출 방법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네이버재팬은 10년 세월동안 철저하게 깨지면서 일본 시장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고, 서비스 개발 초기부터 한국인 개발자와 일본인 개발자를 동시에 투입했다. 마케팅과 디자인 모두 현지에서 이뤄졌다.

▲ 네이버톡

라인 탄생 배경에는 한국의 네이버톡과의 경쟁이 있었다. 네이버톡은 네이버가 2011년 2월 시범서비스를 시작한 모바일 메신저다. 당시 약 50명 가량의 네이버 직원들이 네이버톡 개발과 운영에 투입된 것으로 파악된다.

라인과 네이버톡은 스마트폰 주소록을 바탕으로 이용자끼리 메시지를 주고받는 점에서 다른 점이 없었다. 다만, ‘네이버톡’은 네이버 아이디 기반으로 이용할 수 있어 네이버 카페나 블로그 새 글이 올라오면 알려주는 ‘네이버 미’ 기능을 이용할 수 있었다. 또 네이버톡은 한국어만 서비스가 되고 라인은 영어·일본어·한국어로 서비스가 가능했다.

결국 이해진 의장은 라인의 손을 들어줬다. 이해진 의장은 박탈감을 느꼈을 네이버톡 개발팀에게 위로주를 샀다. 네이버톡의 기능은 라인에 흡수됐다. 라인의 PC, 웹, 모바일 연동 기능이 대표적이다.

 

◆ 라인 퍼스트 전략에 조직 대수술…미국·일본 동시 상장도 고려

▲ 모리카와 아키라 라인 CEO가 올해 일본서 열린 IT재팬 콘퍼런스에서 라인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사진=블룸버그

라인의 성공은 조직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2013년 2월 6일 이해진 의장은 NHN을 포털(네이버), 게임(한게임), 모바일(캠프모바일), 메신저(라인플러스) 4개 회사로 분할했다. ‘라인 퍼스트’ ‘모바일 퍼스트’ 전략으로 조직의 밑그림을 완전히 새롭게 그린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이해진 의장과 투톱 체제를 이뤄왔던 이준호 COO는 네이버를 떠났다. NHN이 지분을 100% 소유하는 다른 자회사와 달리 한게임은 인적분할돼 독립법인이 됐고 이준호 COO가 한게임 수장(현 NHN엔터테인먼트 회장)이 됐다.

라인이 촉발한 기업 분할은 네이버컴과 한게임이 합병한 지 13년 만에 다시 네이버컴과 한게임으로 분리되는 것을 의미했다. 2014년 9월 30일 네이버는 이사회를 개최하고 보유 중인 NHN엔터 지분 전량을 이준호 NHN엔터테인먼트 회장에게 매각했다. 지분관계로 얽혀 있던 네이버와 NHN엔터테인먼트가 서로의 지분을 매각하면서 사실상 결별한 것이다. 네이버는 1기(이해진, 김범수 체제)에서 2기(이해진, 이준호 체제)를 거쳐 이제 3기(이해진 단독 체제)로 넘어갔다.

라인에 승부수를 던진 이해진 의장의 의사 결정은 그야말로 ‘속전속결’ ‘전광석화’ 였다. 그는 일본에서 또다시 검색 서비스를 접었다. 2013년 12월 18일 일본 네이버 검색 서비스(www.naver.jp)와 사전 서비스(dic.naver.jp)를 종료했다. 라인 중심으로 사업을 개편하기 위한 전략이었지만, 검색 부분은 지난 2005년 1차 실패에 이어 2013년에 두 번째 실패를 기록하게 됐다.

일본법인도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2012년 1월 네이버의 일본법인 네이버·한게임·라이브도어 3개사는 NHN재팬으로 통합, 라인 사업에 집중한 데 이어 2013년 4월 1일부터는 NHN재팬을 웹서비스를 담당하는 라인주식회사와 게임을 전담하는 NHN재팬으로 분할됐다.

2013년 이 의장 자신도 네이버 의장직만 유지하고 네이버 전략담당임원(CSO) 타이틀을 내려놓았다. 대신 라인 의장과 라인 회장을 맡으며 라인을 통한 ‘글로벌 사업’에 올인하고 있다.

이해진 단독체제에서 떠오르는 인물은 신중호 라인플러스 대표다. 첫눈의 핵심 인력인 신중호 대표는 라인플러스에서 일본을 제외한 지역의 라인 사업을 진두지휘 하고 있다. 일본 경영진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2014년 5월 일본의 라인주식회사는 기존 모리카와 아키라 대표와 이데자와 다케시 COO를 공동 대표로 하는 2인 경영 체제를 만들었다.

▲ /그래픽=박종규

소프트뱅크와 알리바바 등 유명 기업의 라인 투자 검토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황인준 네이버 CFO는 “그런 종류의 투자 타진은 정말 많았고 이해진 의장과도 여러 차례 토론을 했지만, 네이버 경영진이 내린 결론은 왜 투자받아야 하는 것이냐는 것이었다”면서 “(우리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 시장 진출 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여야 투자받는 것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라인 사용자가 가장 많은 일본 증권 거래소에 라인주식회사를 상장한다는 기본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그러나 여러가지 여건에 따라서는 미국 나스닥 상장, 일본과 미국 동시 상장 등도 검토할 예정이다.

▲ /그래픽=박종규

라인의 성공으로 네이버는 인터넷 분야의 글로벌 플레이어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벼랑 끝에 몰렸던 이해진 의장의 해외 진출 도전사도 글로벌 기업과의 한판 승부를 겨루는 제 2막으로 바뀌었다. 이해진 의장은 “눈 앞의 수익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가 더 중요하다”며 “국가별 1위 사업자가 굳어질 때까지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하다”고 선언했다.

이해진 의장은 2014년 5월 제주도에서 중소기업중앙회가 개최한 리더스포럼에서 “네이버가 자회사가 많지만, 제 지분이나 친인척 지분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주주이익에 반할 수 없는 구조로 돼 있다. 이렇게 투명하게 회사를 운영하면서 대한민국 시장을 지켜내고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 중소기업에게도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류현정 기자 dreamshot@chosun.com
/장우정 기자 woo@chosun.com
/유진우 기자 oj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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