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터넷 대중화 20년](7) 포털 공화국을 연 새 리더십 이해진 네이버 의장 ②

“인터넷의 승자 독식 법칙에 대해 저도 고민을 많이 합니다. 네이버가 우리나라 검색 시장에서 70% 점유율을 차지했지만, 구글은 대부분 국가에서 80~90%까지 점유한 상태입니다. 인터넷이라는 분야는 굳이 2등을 써야 할 이유가 없는 곳입니다. 구글이 다 지배하는 세상에서 네이버가 자국 시장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2014년 6월 25일 이해진 의장은 제주도 롯데호텔에서 열린 중소기업중앙회 주최 리더스포럼에서 “네이버의 성공이 굉장히 흥미로운 사례이기 때문에 외국 전문가들 사이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코리안클릭이 집계한 월간 방문자 수(UV) 기준 인터넷 전체 사이트 순위에서 네이버는 2005년 2월 다음을 제치고 전체 1위를 차지한 뒤 2014년 현재까지 10년간 1등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06년 한국에 진출한 구글의 웹 검색 점유율은 여전히 3% 수준에 머물고 있다. 네이버가 처음부터 1등은 아니었다. 1999~2001년 3년간 야후코리아가 1위, 2002~2004년 3년간 다음이 1위였다.

네이버의 1위 수성 비결과 검색 역사를 돌아보지 않고는 한국형 검색포털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네이버가 한국 인터넷 지형과 구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네이버의 검색 역사는 한국 인터넷 생태계의 특성과 문제점, 전망을 짚어내는 단서가 된다.

 

◆ 3번의 빅딜

이해진 네이버 의장은 창업 15년 동안 20여 차례 굵직한 인수합병을 단행했다. 2000년 초반만 해도 기업을 사고파는 것은 우리나라 기업 문화에서 낯선 것이었다. 이 의장은 네이버 검색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수합병(M&A)을 3차례 주도한다.

첫 번째는 2000년 7월 이준호 교수(현 NHN엔터테인먼트 의장)팀이 이끌던 서치솔루션의 인수였다. 당시 최고의 검색 전문가로 평가받던 이준호 숭실대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자연어 검색 기술을 엠파스에 독점 제공했다. 단어가 아닌 문장으로 검색할 수 있는 자연어 검색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기술 제공 대가를 놓고 이 교수는 엠파스와 갈등에 휩싸였다.

그때 이해진 네이버컴 사장이 그를 찾아왔다. 네이버는 이 교수가 검색기술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10억원을 투자하고 월 4000만원의 연구비를 지원했다. 이 교수는 덕분에 2000년 2월 서치솔루션을 창업한다. 그해 이 교수팀은 네이버를 통해 통합검색 서비스를 시작했다. 통합 검색은 사용자의 질의 의도를 파악해 디렉터리, 웹 문서, 지식검색, 뉴스, 백과사전, 이미지 별로 검색 결과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웹 검색 결과만 보여주던 구글코리아도 통합검색을 따라할 정도로 사용자의 만족도가 높았다.

이 교수는 이런 인연으로 2005년 네이버에 아예 합류했으며 교수 타이틀을 정리한 뒤에는 네이버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았다. 네이버 검색기술위원회를 총괄한 그는 서비스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검색 본부의 손을 들어주며 힘을 실어줬다.

▲ 네이버와 한게임 합병 기자간담회 모습. 당시 이해진 네이버 사장(왼쪽)과 김범수 한게임 대표. M&A 이후 네이버는 두 사람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된다. /네이버 제공

이 의장은 2000년 7월 절박한 심정으로 한게임과 인수합병도 추진했다. 닷컴 거품 붕괴로 벤처기업들이 위기감에 휩싸일 때였다. 당시 네이버는 투자 받은 돈이 있었고 한게임은 고스톱과 포커 등 웹보드 게임으로 엄청난 사용자 수를 확보하고 있었다. 네이버는 한게임 유료화를 통해 번 돈을 검색 품질을 높이는 데 꾸준히 투자했다.

이 의장의 전략을 돌아보면, 게임 사업은 네이버의 캐시카우였지만 그의 핵심 비즈니스는 아니었다. 한게임 창업자 김범수(현 다음카카오 의장)는 2008년 네이버를 퇴사했으며 한게임 출신들도 대부분 네이버를 떠났다. 2013년 이 의장은 게임사업 부문을 네이버에서 완전히 분리했다. 게임사업 부분은 이준호 회장을 최대주주로 하는 NHN엔터테인먼트가 됐다.

 

▲ 2006년 6월 NHN의 첫눈 지분인수 계약 체결 사진. 네이버의 첫눈 인수는 검색 기술의 인수보다는, 인재 인수로 평가 받는다. 당시 첫눈의 CTO였던 신중호 대표(왼쪽에서 세번째)는 현재 네이버의 성장동력인 라인의 국내법인 라인플러스 대표를 맡고 있다. 그 옆으로 사진 중간에는 장병규 첫눈 대표와 최휘영 당시 NHN 대표가 있다. 이해진 네이버 의장, 이준호 당시 CTO(각각 오른쪽에서 세번째, 두번째)도 기념 촬영에 나섰다. /네이버 제공

이 의장의 3번째 빅딜은 2006년 6월 스노우 랭크 기술을 앞세운 검색 벤처회사 첫눈 인수였다. 첫눈은 현재 본엔젤스 대표로 있는 장병규 씨가 KAIST 인맥을 총동원해 국내 검색 기술진을 모아놓은 회사였다.

첫눈을 두고 네이버와 구글의 인수 대결이 펼쳐졌다. 이 의장은 장병규 당시 첫눈 대표와 직접 만나 설득했다. 장 대표는 “사실 에릭 슈미트 당시 구글 회장도 만났고 구글이 더 높은 인수가를 제시했다”면서 “그러나 당시 창업 멤버들은 ‘사업 보국(事業報國)’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국내업체인 네이버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첫눈 인력은 네이버의 일본 검색 시장 진출하는 핵심 멤버로 활동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진 못한다. 그러나 피인수 8년 만인 2011년 결국 모바일 메신저 ‘라인(LINE)’으로 대박을 터뜨리며 네이버 핵심 세력으로 부상하게 된다.

일각에선 네이버의 첫눈 인수는 검색 회사의 인수였다기보다는 인재 인수에 가까웠으며, 특히 현재 라인플러스 대표를 맡고 있는 신중호 당시 첫눈 CTO의 인수였다고 평가한다. 이준호 COO가 네이버를 퇴사한 후 신중호 라인플러스 대표는 이 의장을 잇는 2인자로 급부상했다. 신 대표는 이 의장처럼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어서 ‘리틀 이해진’으로 불리고 있다.

국내에서 검색 개발 인력은 고려대 임해창 교수 제자, 이준호 현 NHN엔터테인먼트 회장 제자, 첫눈 인력 등으로 크게 구분된다. 다음검색을 이끌었던 최병엽 전 본부장, 2012년 다음으로 자리를 옮긴 이상호 다음카카오 부사장이 네이버 출신으로 범 이준호 사단에 꼽힌다. 이상호 부사장은 첫눈 출신으로 네이버에 합류한 경우다.

▲ /그래픽=박종규

 

◆ 구글을 따돌린 3가지 전략

네이버를 검색 회사라고 하지 않는다. 보통 ‘검색 포털’이라고 불린다. 포털 서비스를 통해 검색의 품질을 높이고 경쟁사를 따돌리는 전략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포털’ 네이버의 첫 번째 전략은 철저한 기획으로 넷심을 겨냥한 서비스를 만들어 검색할 거리를 풍부하게 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2002년 10월 네이버가 선보인 ‘지식iN’ 서비스다.

지식iN은 2002년 네이버가 코스닥 등록에 성공하면서 야심 차게 내놓은 서비스다. 당시만 해도 한국어 데이터베이스 양이 턱없이 부족했던 탓에 이용자들이 직접 콘텐츠를 만들도록 한 것이다. 한겨레 ‘디비딕’이 네이버보다 먼저 질의응답 서비스를 했지만, 완성도면에서 네이버에 뒤졌다. 지식iN은 서비스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데이터베이스가 100만개를 넘어섰다. 2011년 기준 하루 평균 6만개의 질문과 답변이 달렸다. 지식iN은 오늘날 네이버 검색 엔진을 있게 한 킬러 애플리케이션이었던 셈이다.

이 의장은 “한국의 검색 수요는 미국과 비슷했지만, 검색 결과로 보여줄 콘텐츠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며 “이런 문제를 사용자가 직접 만든 콘텐츠로 해결했던 시도였다. ‘네이버에 가면 재밌다’는 인식도 퍼졌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신입사원 교육 시간에 지식iN의 성공 사례를 들며 사용자가 원한다면 검색 결과를 만들어서라도 내놓아야 한다는 철학을 가르친다.

네이버는 2003년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기획한 이람 씨를 영입한다. 싸이월드는 페이스북보다 먼저 등장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였다. 그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 서비스를 잇따라 성공시켜 그동안 카페 분야 1위였던 다음을 바짝 긴장시켰다. 블로그와 카페의 활성화로 네이버의 검색결과가 더 풍부해지는 선순환이 나타났다. 이람씨는 현재 네이버 자회사인 캠프모바일의 대표를 맡고 있다.

네이버 포털의 두 번째 전략은 직접 데이터베이스(DB)를 사모으는 것이다. 이 의장은 백과사전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 경험을 들어 백과사전을 네이버에서 서비스하는 데 공을 들였다. 지식백과와 어학사전은 네이버가 2000년부터 시작한 서비스다.

네이버는 백과사전을 시작으로 뉴스· 도서 본문·옛날신문·역사인물·의학용어 사전·미술대사전· 부동산용어 사전·조경식물소재 도감에 이르기까지 총 6만4000개의 표제어, 2만3000개 이미지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2010년 기준). 네이버가 데이터베이스 구매에 들이는 비용은 연간 천억원 수준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DB 사업을 지휘했던 사람은 네이버에서 승승장구했다. 2003년 야후코리아 뉴스 팀장에서 네이버 기획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최휘영 씨는 네이버 대표이사를 맡았다. 또 엠파스 출신으로 2007년 네이버에 합류한 한성숙 씨는 특유의 세심함으로 네이버 데이터베이스의 질과 양을 크게 확대했고 현재 서비스 1본부장을 맡고 있다.

10월 2일 만난 이윤식 네이버 검색본부장은 네이버 검색 철학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해진 의장에게 검색 철학이 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이 의장은 ‘누군가 몸이 아파 네이버 검색 결과를 참고했는데, 오히려 더 큰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실거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런 대화를 통해 내가 깨달은 점은 있다면, 네이버의 검색 철학의 핵심은 ‘신뢰’라는 것입니다. 네이버는 신뢰있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의 데이터를 사들이고 전문가가 답변하는 지식iN 서비스까지 내놓은 것입니다.”

네이버는 이렇게 공을 들여 쌓은 DB는 외부에 절대 개방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이것도 ‘포털’ 네이버의 중요한 전략이다. 지식iN, 카페, 웹툰 등 네이버가 제공하는 대부분의 콘텐츠는 검색 로봇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robot.txt를 적용한다. robot.txt를 적용하면 외부 검색 엔진에서 검색되지 않는다.

구글 측은 “한국의 많은 홈페이지들이 무분별하게 robot.txt를 적용하고 있는 데, 이는 개방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네이버를 비판했다. 그러나 네이버 홍보팀은 “페이스북도 외부 수집을 막고 있다”면서 비공개 원칙을 분명히 밝혔다.

한때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검색 결과의 80%가 네이버 콘텐츠였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네이버는 2011년 세계 1위 검색 광고솔루션업체 오버추어와도 결별하고 자체 광고 플랫폼인 NHN비즈니스플랫폼(NBP)을 만들었다.

최근 들어 네이버 서비스 담당자들을 외부에서 데려가는 사례도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2010년 네이버서비스 책임자 함종민 이사를 영입했고 2013년 한게임 담당 김규호 이사를 전무로, 2014년엔 NHN테스놀로지서비스 윤대균 대표를 상품기획소속 전무로 데려갔다. SKT는 2012년 위의석 네이버 검색광고 플랫폼 담당 전 본부장을 상품기획 부문장으로, LG전자는 최성호 네이버 포털서비스 운영 책임자 그룹장(전무)로 영입했다.

 

◆ 네이버 집권 10년이 남긴 것

▲ /그래픽=박종규

네이버는 지난 2005년 국내 인터넷 시장 전체 1위 자리를 차지한 후 10년동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네이버의 시가총액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02년 한국거래소 코스닥 상장 당시 3272억원이었던 시가총액은 26조원(6일 종가 기준)으로 늘었다.

웹사이트 순위 집계기관인 코리안클릭에 의뢰해 지난 10년 동안 한국 웹사이트 순위 변동을 조사했다. ‘위메프’ 등 소셜커머스 업체를 제외하고는 새롭게 부상한 한국 인터넷 기업을 찾기 어려웠다. 2010년 전체 4위까지 올랐던 ‘싸이월드’는 계속 순위가 하락하고 있다. 같은 기간 미국에서는 ‘페이스북’과 ‘링크드인’ ‘트위터’가 상위권에 새로 이름을 올리며 글로벌 SNS 열풍을 주도했다.

▲ /그래픽=박종규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국내 인터넷 생태계의 역동성이 떨어진 것이 아니냐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김유식 디씨인사이드 대표는 “네이버가 국내 검색 시장 1위를 차지한 이후 소셜커머스와 일베(일간베스트) 말고 새롭게 나타난 국내 대형 사이트가 딱히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 /그래픽=박종규

동영상 제공업체인 판도라TV의 김경익 의장은 “동영상 광고 시장이 커지자 네이버가 자체 동영상 서비스인 ‘네이버캐스트’만 키우고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10월 1일 출범한 다음카카오가 “동반성장하는 모바일 생태계 조성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네이버에 대한 인터넷 업계의 정서적 불만을 파고 든 홍보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네이버의 인터넷 독과점 논란이 불거졌고 공정거래위원회는 두 차례 네이버를 조사했다. 홍역을 치른 네이버도 2006~2008년 법조계 출신과 언론계 출신을 대거 영입해 대정부 커뮤니케이션에 대응했다. 김상헌 네이버 대표는 판사 출신이며 한종호 이사, 윤영찬 이사, 홍은택 이사(현 다음카카오 부사장)는 문화일보와 동아일보 출신이다.

2014년 현재 한국 인터넷 시장에서 검색 부문은 네이버가 지키고 있지만, 나머지 자리는 해외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판도라TV 등이 밀려난 자리에는 유튜브가, 싸이월드가 추락한 자리에는 페이스북이 자리를 잡았다.

네이버는 지난 9월 1일 대대적인 검색 개편을 단행했다. 네이버 측은 “개편 이전에 상위 20개 사이트 클릭 점유율이 44%에 달했으나, 개편 이후에는 16%로 줄어들었다”면서 “다양한 외부 웹 사이트를 검색에 노출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현정 기자 dreamshot@chosun.com
/장우정 기자 woo@chosun.com
/유진우 기자 ojo@chosun.com

0 Comments

No comments!

There are no comments yet, but you can be first to comment this article.

Leave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