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맨 칼럼] 디지털 문명의 프론티어는 여성

우병현 기자

우병현 기자

개인적으로 저널리즘과 저널리스트의 사회적 역할을 언급할 때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을 자주 인용하곤 한다. 아이작슨은 타임지 편집장을 역임한 저명 저널리스트이자, 벤자민 플랭클린, 아이슈타인 등 유명 인물의 삶을 기록한 전기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책을 읽으면 팩트를 꼼꼼히 확인하고 또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광범위하게 인터뷰해 누가 읽더라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이 시각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사람으로서 저널리스트 출신인 아이작슨을 선택한 이유도 그런 저널리스틱한 작업 방식 때문이었다.

▲월터 아이작슨의 신간 ‘이노베이터스(Innovators)’

▲월터 아이작슨의 신간 ‘이노베이터스(Innovators)’

아이작슨의 신간 ‘이노베이터스(Innovators)’ 역시 그의 작업 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명의 위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 대신 오늘날 지구촌 사람들이 누리는 디지털 문명을 개척하고 발전시킨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협업을 기록했다.

특히 아이작슨은 디지털 기술 혁명의 여명기에 여성 선구자들의 지식과 비전이 오늘날 디지털 문명의 뿌리라는 점을 새롭게 부각시켰다. 그는지금까지 출간된 디지털 문명 관련 책들이 미처 다루지 못했던 팩트를 찾아냄으로써 기존 상식을 파괴했다.

필자 역시 이노베이터즈를 소개하는 서평 기사에 이끌려 아마존에서 전자책을 구입해 첫 장을 열고 깜짝 놀랐다. 2차 대전때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천재 암호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과 그의 동료들이 근무했던 블렛츨리 파크(Bletchley Park)의 암호 연구소로 시작할 것이라는 예상을 깼기 때문이다.

이노베이터스는 최초의 여성 프로그래머인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 스토리로부터 시작한다.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본래 이름은 에이다 바이런(Ada Byron)으로 바로 영국을 대표하는 시인의 한명인 바이런의 딸이다.

▲최초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아이디어를 낸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rlace)

▲최초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아이디어를 낸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

하지만 에이다의 어머니는 바이런과 헤어진뒤, 바이런의 문학  DNA가 에이다의 피속에서 꿈틀거리지 않도록 철저하게 문학을 멀리하고 수학을 가까이 하도록 교육했다. 총명했던 에이다는 어머니의 영향 아래 수학자가 되어 19세기 중반 런던의 지식커뮤니티에서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를 만났다.

그녀는 배비지의 계산용 기기(computer) 아이디어를 듣고, 이를 학술논문으로 쓰면서 계산 기능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방안과 아이디어를 풍성하게 담았다. 그녀의 논문은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읽혔고 한 세기 후에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탄생시키는 씨앗 역할을 했다.

세계 최초의 전자 방식 컴퓨터인 애니악(ENIAC)에 생명을 불어넣은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들도 여성이었다. 아이작슨은 진 제닝스 바틱(Jean Jennings Bartik) 등 애니악에 프로그램을 짠 6명의 여성 수학자들의 역할을 찾아냈다.

1930년대에 똑똑한 여자들이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는 것은 흔했고, 이들은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만드는데 핵심 역할을 했다. 하지만 당시 미디어가 애니악 관련 사진에 등장한 여성들의 이름을 표기하지 않을 정도로 여성의 역할을 무시함으로써, 그 존재가 잊혀졌다.

여성 프로그래머의 역할이 비로소 미디어에 등장한 것은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박사였다고 한다. 호퍼 박사는 애니악을 개선한 유니박(UNIVAC)에서 숫자말고 단어를 갖고 프로그램을 짜는 방법을 고안하다가 프로그래밍 언어인 코볼(COBOL)을 개발했다.  이때부터 하드웨어보다 프로그래밍이 더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호퍼 박사는 1986년 데이비드 레터맨쇼에 등장해 레터맨으로부터 ‘소프트웨어의 여왕’이라고 칭송을 받을 정도로 유명했지만, 21세기에 그녀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다.

▲최초의 단어를 이용한 프로그래밍 언어인 코볼(COBOL)의 어머니로 불리는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박사

▲최초의 단어를 이용한 프로그래밍 언어인 코볼(COBOL)의 어머니로 불리는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박사

아이작슨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등장하면서부터 여성들의 컴퓨터사이언스 전공비중이 40퍼센트에서 17퍼센트대로 떨어지는 등 여성들의 디지털 산업내 비중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또 그는 소년들이 집이나 학교에서 하드웨어인 PC를 장난감처럼 갖고 놀면서 수학과 같은 소프트웨어에 집중하는 여성에 비해 우월한 위치에 서기 시작했다고 본다.

몇 년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코드를 배우자’면서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에 눈뜨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창조경제를 표방하면서 소프트웨어 조기교육 방안을 짜고 있다. 이럴 때 디지털문명에서 하드웨어와 동전의 앞뒷면을 이루는 소프트웨어 세계의 개척자가 바로 여성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병현 기자 penma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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