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텔레그램 엑소더스

유진우 기자

유진우 기자

10월 1일 다음카카오 출범 기자 간담회장. 힘을 합친 다음과 카카오톡이 어떤 길로 나아갈 건지 보여주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그러나 이 잔치집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검열’이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검찰의 사이버 모니터링 강화 방안에 대한 카카오톡의 입장을 묻는 질문이 물밀듯 이어졌다. 간담회 후 발표된 기사 제목 역시 ‘카톡 검열’ 논란으로 도배됐다. 다음카카오로선 비전을 보여줘야 하는 자리에서, 가리고 싶은 부분만 드러내 보인 셈이다.

카카오톡은 합병을 앞두고 사용자가 늘어도 아쉬울 판에, 오히려 서비스를 이탈하는 사용자들이 줄을 잇는 추세다. 지난 18일 검찰이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대응방안’의 일환으로 서울중앙지검에서 전담수사팀을 꾸린 이후, ‘카카오톡 계정이 감시당할 지도 모른다’는 사용자들의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가 직접 “카카오톡은 최고의 보안 기술을 갖고 있고 자체 서버 보관 기간도 짧기 때문에 유출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성난 사용자들의 ‘사이버 망명’은 보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카카오톡을 떠난 사용자들은 주로 러시아계 개발자가 만든 독일산 메신저 ‘텔레그램’에 자리를 잡았다. 카카오톡은 애플 앱스토어에서 국내 iOS 소셜네트워킹 부문 1위 자리를 이미 텔레그램에 내줬다.  텔레그램은 카카오톡과 달리 대화상대를 일일이 암호화할 수 있고, 대화 내용이 서버에 저장되지도 않는다.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사법당국의 모니터링이 카카오톡보다 어렵다는 것도 장점이다.

다음카카오가 1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다음카카오 데이원' 기자간담회를 열고 통합법인의 공식 출범을 발표했다. /사진=조선일보DB

다음카카오가 1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다음카카오 데이원’ 기자간담회를 열고 통합법인의 공식 출범을 발표했다. /사진=조선일보DB

“똑같네요, 똑같아.”

김경익 판도라TV 대표이사는 카카오톡 사용자들의 ‘텔레그램 엑소더스(exodus·대탈출)’를 보고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 확인제)를 떠올렸다. 2008년 국내 동영상(UCC)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였던 판도라TV는 사용자가 10만명 이상인 웹사이트에서 인터넷 실명제가 시행된 2009년 이후 곤욕을 치르고 있다. 2008년 42%였던 시장점유율(페이지뷰 기준)은 작년 8월 4%까지 곤두박질쳤다. 인터넷 공간에서 익명을 쓰고 싶어하는 사용자들이 실명제가 시작된 이후 뿔뿔이 흩어진 탓이다.

국내 동영상 사이트에서 이탈한 사용자들은 모두 유투브가 흡수했다. 본사와 서버를 해외에 뒀다는 이유로 유투브는 실명제의 칼날도 교묘히 피해갔다. 지난해 미래창조과학부 조사에 따르면 국내 동영상 시장에서 유투브의 점유율은 인터넷실명제가 시행되기 직전  2%에서 시행 직후 15%로 껑충 뛰어올랐다. 기세를 잡은 유투브는 현재 국내 동영상 시장에서 점유율 74%를 차지하는 공룡으로 컸다.

경쟁업체의 서비스가 더 낫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떠난다면 그 책임은 기업에 있다. 하지만 정부 입김 한 번에 애써 모아둔 사용자들이 떠나간다면 해당 서비스에 인생을 건 벤처기업가들은 좌절할 수 밖에 없다. 혼란이 수습되고 장막이 걷히는 순간,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해외 기업이 나타나 사용자들을 모조리 데려간다면 더욱 그렇다. 한번 빠져나간 사용자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건 새 사용자를 유치하는 것보다 어렵다. 토종 IT기업들 잔치판에 훼방놓기는 이만하면 충분하다.

/유진우 기자 oj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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