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터넷 대중화 20년](7) 포털 공화국을 연 새 리더십 이해진 네이버 의장 ①

2014년 9월 18일 성남시 정자동 ‘그린팩토리(네이버 본사)’. 네이버 검색창을 연상시키는 27층 건물이 오후 햇살을 받아 연푸른 빛깔로 반짝였다. 1층 네이버 도서관은 컴퓨터와 웹 서적을 넘기는 네이버 직원과 성남시 주민들로 넘쳐났지만, 쥐죽은 듯 고요함이 흘렀다. 반대편 잡지 서가대 쪽에선 커피를 마시며 가벼운 수다를 떠는 직원과 외부 손님들로 활기가 넘쳤다. 외국인도 자주 눈에 띄였다. 옥스퍼드대에서 왔다는 한 영국인은 ‘코니’와 ‘브라운’ 등 모바일 메신저 라인 대표 캐릭터들을 보고 반가워했다. 그는 교육출판 분야에서 라인과 협력을 모색할 모양이었다.

▲ 이해진 네이버 의장 /네이버 제공

‘똑똑’. 이날 오후 5시 40분. 취재진이 이해진 의장이 탄 차량 문을 두드렸다. 지하주차장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그에게 즉석 인터뷰를 요청한 것이다. 이 의장은 오전 내내 외부 일정을 소화하고, 오후 늦게 본사에 들러 1시간 정도 업무를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를 태운 차량은 인터뷰 요청에 창문을 10cm 정도 열었지만, 다음 일정을 향해 서둘러 정자동을 떠났다.

네이버 홍보팀 측은 이 의장의 일정에 대해 “한 달에 절반가량을 일본 등 해외에서 보낸다”면서 “한국에 있을 때는 출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고 외부에서 업무를 보는 경우도 많지만, 늘 일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대다수는 ‘네이버’와 하루하루를 호흡한다. 뉴스를 읽고 인기 검색어를 찾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지식인에 묻는다.

1999년 검색업계 후발주자로 출발한 네이버는 22일 기준 시가 총액 25조원, 35개 자회사를 거느린 거대 회사가 됐다. 지난 8월 코리안클릭 집계 기준 PC 시장에서 네이버 검색엔진 점유율은 78.95%, 다음은 17.18%, 구글은 2.61%다. 네이버의 도전과 성장 뒤에는 창업자 이해진 의장이 있다.

▲ 1998년 네이버의 첫 화면. 지금과 달리 주황빛을 띄고 있는 게 특징이다(위). 아래 화면은 1999년 네이버의 첫 화면 캡처. 현재처럼 초록색 배경으로 바뀌었지만, 검색은 구글과 비슷하게 돼 있다. /네이버 제공

◆ 감출 수 없는 비즈니스 근성

▲ 이해진 네이버 의장이 지난 6월 25일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4 중소기업 리더스포럼’에 참석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중소기업중앙회 제공

2014년 6월 25일 제주도 롯데호텔에서 열린 중소기업중앙회 주최 리더스포럼. 이 의장이 오후 강연에 나섰다. 이 의장은 삼성SDS의 사내벤처인 네이버포트 소사장 시절부터 17년에 걸쳐 네이버를 이끌어 왔다. 2004년 대표이사 직함을 내려놓은 후부터는 대외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은둔(隱遁)의 경영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15년 만의 외출’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정보기술(IT)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들은 최근 7~8년동안 고(高) 성장해왔던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발표를 많이 봐 왔다. 이 의장의 강연은 잡스식 프레젠테이션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긴장된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의 말투는 대학을 막 졸업하고 창업 전선에 뛰어든 영락없는 20대 서울 강남 청년의 말투였다.

“안녕하세요. 네이버 이해진입니다. 강연경험도 많이 없고 이런 자리에 많이 안 와봐서 긴장됩니다.”
“이 속도로 강의하다가는 강의가 예정시간보다 너무 일찍 끝날 것 같은데요.” (일동 웃음)

그러나 다음 대목만큼은 힘주어 말했다.

“전 세계 220개 국가 대부분이 구글이라는 딱 한 회사가 검색 시장을 휘어잡고 있습니다. 자국 검색어가 있는 곳이 러시아(얀덱스), 중국(바이두), 대한민국(네이버) 뿐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의장은 네이버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그리고 차분하게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춰갔다.

그는 “네이버 검색 광고의 광고주가 20만명 정도 되는 데, 이 중 80%는 한 달 50만원 이하 비용을 내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모바일 팜을 이용해보라. 손쉽게 무료로 모바일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다”, “ MS 오피스는 비싸지 않느냐. ‘네이버웍스’라는 사무용 소프트웨어를 쓰면, 회사이름으로 이메일을 만들 수 있고 사용법도 네이버처럼 쉽다”고 말했다. 리더스포럼은 중소기업중앙회가 주최하는 중소기업 최대 행사다. 이 의장은 중소기업을 타깃으로 한 네이버 상품을 적절하게 소개했다.

이 의장은 “내가 만든 서비스가 1등을 하지 못하는데 잠이 오느냐”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한다. 그는 “열심히 했는데 성공하지 못하면 일을 못한 것”이라면서 “홈런을 치려면 평소 거의 홈런에 가깝게 치다가 잘 맞는 게 홈런이다”이라며 성과를 강조하기도 했다.

◆ 4% 지분의 오너

▲ 2000년 당시 IT조선닷컴 객원컬럼니스트로 활동했던 이해진 의장 /사진=조선일보DB

이 의장은 KAIST에서 전산학 석사학위를 마치고 1992년 삼성SDS에 입사했다. 이 의장은 “삼성에서는 수십명씩 미국에 가서 인터넷을 배워야 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우리가 만든 소프트웨어는 뒷전이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회상한다. 삼성을 나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5년간의 준비 끝에 1997년 3월 네이버의 전신인 사내 벤처 ‘네이버 포트’를 만들고 신입사원이었던 권혁일, 김보경, 강석호씨와 본격적으로 웹 검색 개발에 뛰어든다. 이후 오승환, 최재영씨가 합류했다. 이른바 ‘네이버 창업 6인방’이다. 이후 1999년 6월 이 사내벤처가 네이버 주식회사로 독립하면서 김정호, 김희숙씨가 추가로 합류했다. 이들까지 포함하면 네이버 창업 멤버는 8인방이 된다. 그러나 초창기 멤버 중에서 현재까지 네이버에 남아있는 사람은 강석호 이사(연구개발 담당)뿐이다.

이 의장은 그때까지 삼성SDS에서 개발하던 것을 계산해 지분의 30%를 삼성SDS에 주는 것으로 하고 창업 멤버들과 지분을 나눠 갖기로 했다.

네이버가 2002년 10월 상장을 앞두고 제출한 사업보고서부터 현재까지 13년간 주요 임원들의 지분 변동 내역을 보면, 이해진 의장의 지분은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2014년 6월 반기보고서 기준 이 의장 지분은 4.64%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경우, 넥슨에 지분을 팔기 전까지 25%에 달하는 지분을 갖고 있었다. 김정주 넥슨 회장과 특수관계인은 넥슨 그룹을 지배하는 지주회사 ‘NXC’ 지분을 70% 가까이 보유하고 있다.

이 의장의 지분이 낮은 것은 네이버가 포털 후발주자로 출발했기 때문에 대규모 자금을 유치하며 경쟁에 나서야 했고, 이 의장이 검색 기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자신의 지분이 희석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기업 인수에 나섰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1999년 한국기술투자(KTIC)로부터 100억원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테헤란밸리는 벤처붐으로 돈이 넘쳐날 때였지만, 이 점을 감안해도 단일 벤처 기업이 100억원을 투자받은 사례는 없었다.

이 때문에 잠깐이긴 했지만, 2000년 7월부터 2001년 8월까지 네이버 1대 주주 자리는 이해진이 아니라 벤처투자회사 한국기술투자가 차지했다. (2000년 12월 31일 기준 한국기술투자 14.07%, 이해진 12.13%.)

이 의장은 또 당시 최고 검색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보유한 현금 100억원 가운데 40억원을 투자해 이준호 교수(현 NHN엔터테인먼트 회장)가 검색 전문기업 서치솔루션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왔다. 2000년 7월 네이버는 서치솔루션을 합병했다.

2002년 한국거래소 코스닥 시장 등록 심사 과정에서는 자본가 홍기태 씨가 새롬기술을 적대적으로 인수한 후 네이버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기도 했다. 이 문제가 코스닥 상장 심사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자 이 의장은 당시 자신의 지분 7% 중 1%를 내놓아 문제를 해결했다.

▲ 2001년 이후 이해진 의장·특수관계인 지분 변화 /표=최지웅 연구원

현재 네이버 1대 주주는 국민연금공단기금이다. 국민연금공단기금의 네이버 지분율은 9.19%. 그 뒤를 이어 더 캐피탈그룹컴퍼니(The capital group company)가 5.2%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 의장 다음으로는 이준호 NHN엔터테인먼트 의장 지분율(3.74%)이 높다. 네이버 측은 “이 의장 지분율이 낮지만, 주요 주주 가운데 이 의장 친인척은 1명도 없고 자회사에 개인 지분을 섞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 “집요하게 소비자 니즈를 파헤쳐라”

이 의장은 네이버의 거의 모든 서비스를 직접 챙기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의장이 ‘오타’를 발견하고 불호령을 내린 이야기, 이 의장의 서비스 철학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각 본부장들이 영어 철자까지 바로 잡았던 일화 등은 인터넷 업계에서 여러 차례 회자할 정도로 유명하다.

이 의장은 “집요하게 소비자의 요구(니즈)를 파헤쳐라”고 강조한다. 또 그는 “서비스 출시 시기는 소비자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이 시점을 정한다. 시장의 니즈에 맞춰라”고 말한다.

그는 “소비자가 요구하는 건 기술이 새롭게 나온다고 바뀌지 않는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소통의 요구는 늘 있었다. 이것은 라인에게도 비슷한 시사점이 있다”고도 했다. 그가 10년 이상 사업을 하면서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회사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름대로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의장은 제대로 될 서비스와 그렇지 않은 서비스를 어떻게 구분할까.

“제가 서비스를 해보면, 사업은 대포가 아니라 미사일입니다. 타깃을 잡아도 사용자가 계속 변하며 환경도 변하고 경쟁자도 나타나고 모든 것이 변합니다. 목표를 잡고 쏘는 대포가 아니라 끝까지 추격하는 미사일이어야 명중할 수 있습니다. 결국 IT분야는 서비스하는 팀의 열정이 더 중요합니다. 맨 처음에 하려고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되는 경우도 많은데, 결국 그걸 성공하게 하는 건 열정을 가진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 새로운 재계 리더십

이 의장의 ‘서비스주의’는 그가 진행하는 연단(演壇) 곳곳에서 잘 드러난다. 연단은 이해진 의장이 직접 강연하고 질의응답도 받는 행사다. 보통 네이버 부장급 이상 직원 혹은 개발자,기획자 등을 대상으로 1년에 한 번 이상 열린다. 별다른 각본은 없다. 이 의장이 연단에 생수 한 병 올려놓고 원고 없이 시작한다.

네이버 직원 중에서 “이 의장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도 의장을 몰라보는 사람이 많다”, “같은 층에서 근무했지만, 이 의장을 별로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있다. 그러나 연단에 참석했던 네이버 중간 관리자들은 이 의장이 은둔형이라고 하면 손사래부터 친다.

연단 행사에서 이 의장의 손짓도 커지고 무대에서 뛰어내려가 질문하는 직원에게 마이크를 가져다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 중견 직원은 “연단에 참석하는 일이 가장 신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회사방향이나 미래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 허심탄회하고 소상하게 이 의장을 생각을 공유하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네이버에 재직 중인 중간 관리자 A씨의 말.

“2010년 전후 연단 때로 기억해요. 아이폰이 뒤늦게 국내에 나왔지만, 소비자들은 스마트폰에 열광하고 있었고 무료 메신저 서비스 카카오톡이 인기몰이에 나설 때였어요. 네이버 중간 관리자들이 네이버가 모바일 흐름에 너무 천천히 대응하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을 품을 때 이 의장이 주도하는 연단이 열렸어요.”

당시 이 의장은 중견 간부들이 모바일에 가진 관심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인터넷에 혁신을 부르짖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갔느냐”, “어떤 회사도 남아있지 않느냐”, “네이버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의장이 결과적으로 꼭 바른 판단을 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 의장과 중간 간부들 사이에선 상당히 밀도 높은 대화가 이뤄졌다는 점입니다. 이 의장의 스킨십과 리더십이 제대로 드러나는 현장이었어요.”

A 씨의 말이다.

이 중간관리자와의 대화는 이 의장이 경영 방침을 바꾸는 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네이버는 모바일 전략을 강화했으며 2013년 포털(NHN)과 게임(한게임, 현 NHN엔터테인먼트)을 분할하는 한편 모바일 신규법인인 캠프모바일과 모바일 메신저 라인의 국내 법인인 라인플러스를 설립하는 등 강력한 회사 개편에 나선다. ‘모바일 퍼스트’를 향한 대수술을 단행한 셈이었다.

22일 기준 네이버보다 시가총액이 높은 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차, SK하이닉스, 포스코, 한국전력뿐이다. 이 의장은 대한민국 재계를 이끌어 온 제조업계 창업 리더들과는 다른 리더십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한국기술투자에서 네이버 투자와 심사를 담당했던 부경훈 현 케이넷투자파트너스 이사는 “이해진 의장을 처음 만났을 때 ‘착한 공대생’ 이미지였고 전형적인 리더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만날수록 합리적인 CEO였다”면서 “돌이켜보면, 그것이 공장을 거느린 제조업 리더십과는 다른 리더십, 인터넷 분야의 새로운 리더십이 아니었나 한다”고 말했다.

네이버를 퇴사한 B씨는 “역설적으로 지분이 낮은 이 의장이 오너십을 유지하는 나름의 방법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 네이버 상장 이후 외국인 지분율 추이 /표=최지웅 연구원

이러한 경영 스타일은 외국인 주주들의 신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상장 당시 1%가 채 안 됐던 외국인 지분율은 2005년 5월부터 50%를 넘어서더니 2014년 9월 19일 현재까지 55%가 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11년에는 외국인 지분율이 70%에 육박하기도 했다. 이해진 의장은 국내 IR 행사에 관해선 최고재무책임자(CFO)에게 전권을 맡기지만, 주요 외국인 투자자들과는 개인 미팅을 가질 정도로 투자자들을 관리한다.

경쟁사 다음을 창업한 이재웅 씨는 2007년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고 2008년에는 등기이사직까지 내려놓으면서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2012년 말에는 야후코리아가 철수했다. 대한민국 인터넷은 그야말로 네이버 천하가 됐다. 네이버가 커갈수록 그림자도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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