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터넷 대중화 20년](5) 한국 인터넷 아버지이자 스승 전길남 KAIST 명예교수 ②

 

– 한국 인터넷 효시를 만들고 창업과 연구의 요람을 이끈 인터넷 시대의 스승

전길남 KAIST 명예교수가 2013년 6월 7일 조선비즈 연결지성포럼에서  ‘한국 인터넷 역사 프로젝트’와 ‘아시아 인터넷 역사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최지웅 연구원
▲ 전길남 KAIST 명예교수가 2013년 6월 7일 조선비즈 연결지성포럼에서 ‘한국 인터넷 역사 프로젝트’와 ‘아시아 인터넷 역사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최지웅 연구원

– 한국의 인터넷 주요 사건, 이를테면 10대 사건을 꼽는다면 어떤 일을 떠올리시겠습니까.

“고민스럽네요. 일단 1982년 SDN 구축이 중요합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을 개발한 것이니까요. 1985년 서울에서 열린 ‘태평양 컴퓨터 커뮤니케이션 심포지엄(Pacific Computer Communications Symposium)’도 꼽고 싶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세계적으로 처음 열린 인터넷 콘퍼런스가 아닌가 합니다.

1990년 한국과 미국 사이에 일본을 경유한 해저 케이블을 설치하면서 하나(HANA)망이 미국에 연결돼요. 한국의 인터넷이 비로소 글로벌 인터넷이 된 셈이죠.

1990년대 중반 이후 넥슨, 다음, 네이버 등 주목할 만한 인터넷 벤처들이 나왔습니다. 또 1998년 두루넷을 필두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나온 것도 중요하지요. 미국과 일본은 종합정보통신망(ISDN)을 고집하다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는 늦었습니다. 같은 해 엔씨소프트가 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서비스하게 되지요.

1999년 국내 인터넷 사용자는 1000만명을 돌파합니다. 우리나라 인터넷이 급격히 발전한 ‘티핑 포인트’가 만들어졌습니다. 같은 해 새로운 뉴스 형태인 ‘오마이 뉴스’도 선보였지요. 오마이뉴스는 좋은 아이디어로 출발했는데, 크게 발전하지 못한 것은 아쉽네요.

-2000년 이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습니까?

2003년 1월 25일 우리나라 인터넷이 처음으로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SQL 슬래머 웜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인터넷이 몇 시간 동안 마비가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이처럼 인터넷이 완전히 무너진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1.25 인터넷 대란에 관한 제대로 된 분석 보고서는 아직 없어요.

2008년 인터넷 악플에 괴로워하며 배우 최진실씨가 자살하는 사건도 있었지요. 인터넷 폭력의 상징과도 같은 사건입니다. 왜 이런 사건이 발생했는지 선구적 연구를 통해 규명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인터넷 선진국입니다.

2009년엔 한국에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2010년 카카오톡이 나오죠. 우리나라에 컴퓨터를 연구하는 사람이 나를 포함해 수천 명은 되는 데 왜 스마트폰을 개발하지 않았을까도 되짚어보면 좋겠어요.”

/표=최지웅 연구원
▲ /표=최지웅 연구원

– 한국의 인터넷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인물들을 꼽는다면요.

“아주 많지요. 초대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경상현 박사는 1980년대 정부에서 인터넷 연구를 방해하는 일이 있으면 앞서서 막아줬어요. 인터넷 콘테스트에 예산 지원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홍성원 박사는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훗날 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 회장 역임)으로 있으면서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에 공을 많이 들였고, 이철수 전 한국전산원(한국정보화진흥원) 원장도 데이콤에 있을 때 행정전산망 사업을 총괄하며 네트워크 기틀을 닦았습니다. 내 제자였던 허진호 박사와 박현제 박사가 1990년대 크게 활약했죠. 그들 덕분에 한국 인터넷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김정주 넥슨 창업자, 이재웅 다음 창업자,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김범수 한게임 창업자(카카오톡 의장), 송재경 XL게임즈 창업자도 기억해야 합니다. 오연호 오마이 뉴스 대표도 새로운 뉴스 제작 모델을 만들어 주목을 받았습니다.”

전길남 KAIST 명예교수가 지난 2000년 국내에 인터넷 시대를 연 다른 인물들과 담소를 나누다 웃고 있다. 왼쪽부터 한근희(당시 한시큐어 사장), 변옥환(당시 연구개발정보센터 실장), 전길남(KAIST 명예교수) 허문행(당시 한국통신 실장)김양욱(당시 삼성전자 과장). /사진=조선일보DB
▲ 전길남 KAIST 명예교수가 지난 2000년 국내에 인터넷 시대를 연 다른 인물들과 담소를 나누다 웃고 있다. 왼쪽부터 한근희(당시 한시큐어 사장), 변옥환(당시 연구개발정보센터 실장), 전길남(KAIST 명예교수) 허문행(당시 한국통신 실장)김양욱(당시 삼성전자 과장). /사진=조선일보DB

– 온라인 게임을 제외하고 한국에서 최초 역사를 쓰고도 세계무대에서 사리지는 서비스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빨리 무엇을 잘 만드는 데 계속 응용해서 더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부족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만든 사무용 프로그램 ‘워드프로세서’나 ‘스프레드시트’를 많이 쓰시죠? 이중에서 MS가 먼저 만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MS라는 회사는 항상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만들어요.

일반적으로 첫 번째 개발한 것은 대부분 망해요. 잘 안 돼요. 예외는 애플 같아요. 애플은 맥,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팟 등을 제일 먼저 만들고 성공도 시켰습니다. 연구 분야에서는 먼저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개발 분야에서는 적절한 시기에 제대로 만드는 것이 중요한 거죠.”

–  교수님께서는 2013년 인터뷰할 때 삼성전자 LG전자 스마트폰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셨습니다. 실제로 지난 2분기 삼성전자가 중국의 샤오미에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내줬습니다.

“중국이 10만원에 스마트폰을 공급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하이엔드(고급) 시장을 유지하려고 하겠지만, 일본이 무너진 것처럼  힘겨운 싸움이 될 것 같아요. 특히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사용자 인터페이스(UI)는 여러가지로 부족합니다.”

– 1982년 5월 SDN 구축을 기점으로 하면, 한국인터넷 역사는 30년이 넘습니다. 또 1994년 코넷 서비스를 기준으로 하면 한국 인터넷 대중화 역사도 20년이 됩니다. 한국 인터넷 발자취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요.

“인프라와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앞서갔지만, 정작 유통되는 정보의 질은 낮았습니다. 이것을 뜯어 고치는 것을 도전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1등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후진성을 정리하는 것이 선진국입니다. 1등, 2등은 열심히 하면 됩니다.

무엇이 후진성일까요. 예를 들면, 주민등록번호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사생활(프라이버시)을 무시한 것입니다. 성별, 출신, 생년월일까지 파악할 수 있는 관리 번호는 문제가 있습니다. 게다가 해킹까지 당해서 인터넷에 노출된 상태예요. 선진국에서는 없는 일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마저 제발 쓰지 말라고 하는 액티브엑스로 공인인증서를 만든 것도 굉장히 후진적인 일이지요.

또 우선순위로 처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보안입니다. 북한도 있고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생각하면 보안 경쟁력은 계속 챙겨야 합니다. 진짜 큰일이 날 수 있습니다. 특히 국내 금융 분야 보안은 상당히 취약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 인터넷과 웹의 속성 중 하나가 모든 정보가 공유된다는 것입니다. 한국 보안이 뒤처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국이 선구자 역할을 하다 보니, 보안 사고도 한국에서 먼저 터졌습니다. 한국의 보안 솔루션도 프로토타입(시험제작형)으로 만들었고요. 앞으로는 제대로 만들어야죠. 예산은 1조원에서 10조원 정도가 들 것으로 보입니다. 늦으면 늦을수록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영국 산업혁명으로부터 배울 거리가 있을 것입니다. 영국은 철도와 철강 산업의 발달로 산업 혁명을 이뤄냈지만, 각종 부작용으로 고생했습니다. 영국의 문제 해결 과정을 한국의 정보통신 분야에 적용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 1980년대에는 국가 발전에 사명감이 있는 학계, 산업계 인물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선진국으로 가려면 오피니언 리더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인터넷 기업 대표들이 그런 리더 역할을 하는 것이 맞습니다. 미국을 보면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창업가나 CEO들이 리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가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는 데 김정주 회장도 그럴 수 있어야죠. 대학원 때도 성적 톱 순위를 다툴만큼 똑똑했고 사업도 잘하고 있어서 디즈니 같은 회사를 만들 수 있는 친구라고 봐요.

김정주 회장이나 이해진 의장한테도 이런 이야기를 해요. 그들도 리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조금 힘든가 봐요. 실수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가령 미국은 그냥 하면 되는 데 우리는 안 그런가 봐요. 언론에서 도와주는 분위기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전길남 KAIST 명예교수는 인터뷰나 강연 중 웃음이 많은 편이다. 가끔씩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에서 대가의 풍모와 어린이의 순수함이 묻어 났다. /사진=최지웅 연구원
▲ 전길남 KAIST 명예교수는 인터뷰나 강연 중 웃음이 많은 편이다. 가끔씩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에서 대가의 풍모와 어린이의 순수함이 묻어 났다. /사진=최지웅 연구원

– 앞으로 인터넷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트렌드는 무엇입니까.

“예전에는 인터넷을 어떻게 보급할 것인가가 이슈였습니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인터넷 보급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도 웬만한 사람은 휴대전화를 갖고 있어요. 현재 인터넷 인구는 20억명 수준인데, 조만간 50억~70억명이 될 것입니다.

과거 20년은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는 시기였다면, 앞으로는 인터넷 환경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개발도상국 입장에서 인터넷을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선진국은 스마트폰, 노트북 컴퓨터, 태블릿PC까지 여러 개 컴퓨터를 한꺼번에 씁니다. 개발도상국은 월급 털어서 100달러짜리 스마트폰 하나를 쓸 수 있지요. 이런 나라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프로세서를 라이선스 비용을 내고 쓸까요. 만 원짜리 오피스를 필요로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우리가 선점하면 좋겠습니다.”

– 미국 상무부는 1998년 전 세계 인터넷 주소를 할당 관리하는 비영리 법인 ICANN을 설립해 운영해왔습니다. 미국 국가통신정보청은 내년 9월까지 국제 다자기구에 인터넷 관리 권한을 이양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인터넷 거버넌스는 어떻게 바뀔 것으로 보시나요.

“미국 정부는 인터넷을 개발하고 나서 지난 20년 동안 민간에 차례로 소유권과 관리권한을 넘겨 왔습니다. 이번에 미국이 인터넷 관리 권한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큰 이슈입니다. 반기문 총장이 이끄는 유엔 산하에서 관리 기구를 수년 내에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굉장히 복잡한 이슈입니다. 한국이 주요 플레이어가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 올해 10월 유엔 산하 ITU(국제전기통신연합)의 최고위급 의사결정회의인 ITU 전권회의가 부산에서 열립니다. 인터넷 거버넌스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지 않을까요.

“거기에서 이슈가 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ITU 전권회의를 축제라고 생각하는 데, 미국과 중국이 대립한다든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 중국 인터넷 기업들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성장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굉장합니다. 저가(低價)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커요. 나도 한때 중국의 인터넷 서비스에 여러 가지로 도움을 많이 주는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달라요. 한국과 비교도 안 되죠. 완전히 다른 클래스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는 전 세계 웹 서비스 랭킹 톱 10에 네이버도 있었고 일본 기업도 있었지만, 이제 미국과 중국 기업밖에 없습니다. 특히 중국의 사이버 보안 수준은 굉장히 높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일정 정도의 합의를 하지 않으면 사이버 전쟁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 부인이 문화 인류학으로 유명하신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입니다. 조한혜정 교수님이 남편과의 대화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인터뷰를 봤어요. UCLA 유학 시절 만나셨나요.

“네, 맞습니다. 나이는 5년 아래이니까 내가 박사 과정이 끝나고 부인이 박사과정에 들어왔습니다. 분야가 매우 달라 서로 전문가 수준에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다만, 성의있게 대화를 합니다. 최근 한국이 어떻게 하면 선진국이 될까.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조건 1~2년 다른 나라에 다녀오게 하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주고받았습니다.”

2014년 2월 26일 서울 홍은동의 한 호텔에서 조선일보와 인터뷰 한 전길남 박사. 전 박사는 한국을 인터넷 강국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국가에 인터넷 기술을 전파하기 위해 애썼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인터넷 국제표준을 정하는 국제인터넷협회가 선정하는‘인터넷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사진=이태경 기자
▲ 2014년 2월 26일 서울 홍은동의 한 호텔에서 조선일보와 인터뷰 한 전길남 박사. 전 박사는 한국을 인터넷 강국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국가에 인터넷 기술을 전파하기 위해 애썼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인터넷 국제표준을 정하는 국제인터넷협회가 선정하는‘인터넷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사진=이태경 기자

– 지난 30년 동안 인터넷 업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록하는 ‘인터넷 역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역사 프로젝트를 먼저 시작하고 한국 인터넷 역사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는데, 경쟁하며 함께 연구했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내 머릿속에 많이 남아 있지만, 내가 떠나면 어떡하나 싶었습니다. ‘안 되겠다, 이제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80~1990년대 초 아시아에서 만들어진 인터넷 협력 조직 30개 중 15개 조직은 내가 관여했는데, 어떤 프로젝트는 성공하고 어떤 프로젝트는 실패했습니다. 왜 그런지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진국으로 가려면 기록을 많이 남겨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인터뷰를 잘 안 합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핵심 멤버의 경우, 인터뷰해서 남겨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인터넷 기업 창업자 김범수, 김정주, 이해진, 이철수 정도면 한국어 인터뷰를 동영상으로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혹자는 대학교수가 책을 쓰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대학교수가 얼마나 재미없게 쓰느냐고요. 하여튼 나는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웃음)”

전 교수가 주축이 되어 쓴 ‘아시아 인터넷 역사(An Asia Internet History) – First Decade(1980~1990)’는 세상에 나왔고 1991년 이후 10년 아시아 인터넷 역사를 정리한 두 번째 책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현재 전 교수는 3번째 책인 2001년 이후 10년 아시아 인터넷 역사를 정리하고 있다.

2013년 6월 7일 조선비즈 연결지성포럼에 참여한 후 돌아가는 전길남 KAIST 명예교수(왼쪽). 전 교수는 평소 소탈한 옷차림을 즐긴다.  /사진=최지웅 연구원
▲ 2013년 6월 7일 조선비즈 연결지성포럼에 참여한 후 돌아가는 전길남 KAIST 명예교수(왼쪽).  왼쪽은 한국인터넷프로젝트 간사를 맡고 있는 안정배씨. 전 교수는 평소 소탈한 옷차림을 즐긴다. /사진=최지웅 연구원
류현정 조선비즈 기자 dreamshot@chosun.com
유진우 조선비즈 기자 oj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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