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이제는 구글을 잘쓰는 직장인

눈 덮힌 교정은 아름다웠다. 이지는 한발한발 천천히 내딛었다. 뽀드득 소리가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것 같았다. 사실 간지러운 건 이지의 마음이었다.

‘이 학교에 입학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이라니…’

학교 호수를 지날 때는 지난 첫사랑이 떠올랐다. 광장을 지나 법학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등나무 벤치를 바라보며 신입생 때 동기들과 맥주파티를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중앙도서관 옆을 지날 땐 치열하게 자료를 찾으며 졸업 논문을 작성했던 추억이 지나갔다.

“어이 김이지 사원. 뭐 그렇게 감성돋는 표정으로 도서관을 바라보시나?”

PD가 되겠다는 꿈을 이룬 슬기가 이지를 불렀다.

이지와 슬기는 따뜻한 캔커피를 뽑아 벤치에 안자 대학생활을 곱씹었다. 그 친했던 4인방 모두 오늘 졸업식을 끝으로 대학을 떠나 사회로 나가게 된다. 장난꾸러기였던 정우는 장교가 됐고, 정우의 여자친구 슬기는 교육방송 다큐멘터리 PD가 됐다. 호익이는 노무사 자격증을 따 노무법인에 취직했고 이지 역시 목표를 달성했다.

넷은 졸업식 전 같이 밥을 먹고 커피전문점에 앉아 대학생활을 추억했다. 다들 열심히 자기 목표를 따라 대학생활을 했지만 각자 조금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지는 앉은 자리에서 미리 준비해둔 졸업생 대표연설 대본을 고쳐나갔다.

“안녕하세요. 졸업생 대표 김이지입니다. 다들 나름 치열하게, 나름 계획성 있는 대학생활을 하고 계시죠. 저 역시 그랬습니다. 아니 오늘 졸업하는 저희 모두 그렇게 대학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아쉬움이 남네요.

그 아쉬움은 어디에서 생기는걸까요? 낮은 학점? 좀 더 높게 나오지 않은 토익점수? 남들보다 떨어지는 사회 경험? 맞습니다. 아쉬움은 상대적인 부분에서 크게 나타나더군요.

저는 과 수석 졸업생도 아니고, 졸업생 중에서 가장 좋은 회사에 취직한 것도 아닙니다. 스펙이 화려한 것도 아니고 대학생활 동안 엄청난 논문을 남기지도 못했죠.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런 점들이 아쉬웠던 이유는 과정을 좀 더 즐기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방금 점심 식사를 마치고 같이 졸업하는 동기들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다들 아쉬운 부분이 많았지만, 가장 아쉬운 점은 ‘대학생활을 좀 더 열심히 즐기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교환학생 시절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알아갈 수 있었고, 논문은 좀 더 잘 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을 아껴 좀 더 많은 곳에 여행을 갈 수도 있었고, 좀 더 해보고 싶은 일에 투자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궁극적으로 해야할 일을 해야할 때, 집중적으로 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나름 졸업생 대표가 이런 부정적인 얘기만 하니까 마음이 더 무거우시죠?

이제 지난 5년동안 제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남들보다 조금 더 개인 시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던 팁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절대 이 자리에 없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주세요. 하하.

개인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남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라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다른 사람과 협업할 때 비로소 자기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대학생들은 협업을 싫어합니다. 왜? 팀플의 경험 때문이죠. 개개인 노력의 합보다 못한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 이유는 진정한 협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진정한 협업은 서로의 시간과 아이디어를 뺏으면서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진정한 협업을 위해서는 시작부터 결과물까지 모든 것을 공유하세요. 물론 쉽지 않을겁니다. 내 것을 공유하면 나만 손해보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거에요. 하지만 협업은 내 것을 내어주고 다른 사람의 노력을 받는 지속적 피드백 과정입니다. 협업에 익숙해지면, 협업에 참여한 모두가 시간과 노력을 아끼게 되는 작은 기적을 만들 수 있어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은 목표하는 바가 다들 다를겁니다. 모두 같은 목표를 갖고 협업을 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작은일부터 협업을 하는 습관을 들이면 어느순간 내가 다른일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날거에요.

저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구글 드라이브로 피드백을 요청하세요. 저 역시 언제라도 여러분들의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하… 제가 준비한 연설문은 여기까지에요. 이렇게 얘기하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 같았는데 여전히 아쉬움은 남네요. 벌써 고등학교까지 세번이나 졸업을 했는데도 정든 곳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네요.

모교에서 마주칠 기회는 앞으로 줄어들겠지만, 구름속 세상에서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고 아쉬운 마음을 추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지의 연설에 졸업식 참석자 모두가 크게 박수를 쳤다. 그렇게 졸업식은 끝났고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이지의 지메일 알림이 조금 자주 울릴 뿐이었다.

‘정호익(Google 문서에서 공유)- 사례분석_노동권침해및보상사례_xx기획’

‘박슬기(Google 문서에서 공유)- 다큐제작리서치_직업세계를 찾아서_광고홍보편’

유인선 인턴기자 techchosu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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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wered by Tech 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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